정란숙의 그림이 있는 에세이 124
명제: 사랑 2000년 작 10F Oil on canvas
1년 중에 가장 아름답고 신록이 짙어가는 5월은 행사가 많아서 그 이름만큼이나 가족들의
사랑과 이웃사랑 내 생일도 들어있으며 그리고 부처님의 탄생과 더불어 우리 모두에게
느껴지는 사랑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닫게 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일깨워 주는 달이라
여겨지는데 오월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삶의 길목에서 가장 빛나는 한 순간은 아닐지라도 가족의 사랑에 연인
들의 사랑에, 구도자의 사랑에 머물며 점점 커져가는 나뭇잎의 잎처럼 비단물결인 듯 초록
으로 물들어가는 산과 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잔잔한 감동이 기억으로 남아 나의 마음을 기
쁨으로 미소 짓게 한다.
환절기가 되면 찾아와 나를 꼼짝 못하게 하는 독감으로 꼬박 한 달을 지독하게 앓으며 힘들
어 하면서도 답답한 작업실에서 쿨럭쿨럭 하며 지내기보다는 억지로 일어나 자연의 넘쳐나는
생명력을 마음으로 느끼고자 가까운 곳으로 차를 타고 다녔다. 몽실몽실, 꿈틀꿈틀, 일렁이
는 숲속에서 교교히 흐르는 달밤의 정취를 느껴보고 가까이 흐르는 강 을 바라보며 열에 들
뜬 이마를 식히고, 기침을 하다 힘이 들어 식은땀과 진땀을 번갈아 닦으면서도 바라보기 편
하고 머물기 좋은 곳으로 다니면서 신선한 공기와 말없이 피고 지는 이름 모를 풀꽃들의 꽃
잔치를 보면서 살아보고자 하는 희망을 내 가슴에 받아들이려 했다.
작업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이뤄야 하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을 하고 바라보고 싶으냐에 마음을 썼다. 마음과 달리 이제 면역력도 떨어져
자꾸 약해지는 나의 건강에 대한 두려움이 좁고 물감냄새 풍기는 방 보다는 상큼한 내음이
주는 풍경을 내 안에 담고 그 속에 머물며 자연이 주는 정기(精氣)를 느껴보고자 했다. 밤하
늘의 별을 보면서 숲속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들과 뾰족뾰족 올라오는 풀들을 보면서 햇살
한 줌도, 살랑거리는 바람도, 쏟아지는 빗줄기 모두가 살아있게 하는 요소들이라 생각하니 너
무나 소중하게 느껴지고 아름답게 보였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순간에는 아! 좋다. 하는 감탄사
밖에 나오지 않는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가 아름답다.
내가 살면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일이 흔적으로 남고, 내가 그린 작품이 뚜렷한 흔적으로
남을 것이라 생각을 하면 내 뒷모습이 추하지 않게 좀 더 잘 살아야한다는 의식을 갖게 한다.
살면서 미처 생각지 못하고, 보지 못하여 놓치고 바라보지 못한 게 수없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
면서 오월에 돌아가신 두 사람의 죽음을 생각해 보았다. 한사람은 신체적인 장애를 극복하고,
암과 투병을 하면서도 학생들을 가르치며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마지막까지 하며 ‘아멘’으로
생을 마감한 영문학교수, 한사람은 얼마 전까지 모든 권력과 영화를 누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
어 모든 사람들을 경악과 분노와 슬픔으로 가슴을 메이게 하는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
사람은 어쩌면 모두가 자기가 보고 싶은 모습만 보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 잡혀
그 길로 매진하려고 한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며 무섭게 몰아치는 눈비를
고스란히 맞으면서도 밝은 햇살을 주는 기쁨을 간직하지 않은 나무가 어디에 있을까? 조금씩
뿌리를 대지에 깊숙이 내리며 아름드리나무가 되어가고 짙은 향기를 뿜어내는 꽃들의 성장은
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산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성장의 과정이라고 ........
무엇이 한사람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감사하며 죽게 했고 한사람은 온갖 회한과 자신의 존재
감에 상심하여 바위에서 뛰어 내리게 했을까? 자신의 그릇이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그것을 잘 가꾸면서 세상이란 중심에 스스로를 잘 세우는 일이 나를 사랑하고 또 다른 사랑을
잉태하며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와는 무관한 두 사람이지만 그들이 꽃피운 생(生)
은 죽었어도 영원히 우리의 가슴에, 역사에 남을 꽃인 것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과 사연들 속에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고 슬프고 충격을 주는 사
건은 많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가슴에 담아야 했던 말 못할 사연은 무수히 많을 것이지만 그
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내 존재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주고 있느냐에 상처
의 깊이도 달라지고 받아들임도 다르게 느껴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를 변화 시키시는 하느
님의 사랑을 한번이라도 느낀다면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소중하게 가꾸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
가는 길로 가야하지 않을까?
수술 후 1년 동안, 3개월에 한 번씩 검사하며 병원처방을 받아 약을 먹으면서도 막연한 두려움
에 나의 마음의 미련과 욕심을 버리려 노력하며 살았는데 1년 만의 검진에 이상이 생겨 결과를
기다리는 지금 두 사람의 죽음 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적당한 선에서 멈추며 비우며
속도를 조절하며 살아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추하지 않는 그림자를 남길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보는 밤이 깊어간다.
사랑: 오월은 장미의 계절이다. 장미를 가득 담아 그대에게 주고파........
여인의 가슴에는 가족들의 사랑과 기다림의 한이 대나무 반짇고리에 담겨
바늘꽂이에 실패에 나비가 되고 모란이 되어 골무에 노리개에 앉아있다.
사랑이란 받아들임이다.
2009-05-24
그림이 있는 에세이 124
위 그림과 글은 畵家 丁蘭淑이 119편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중단하였던 <그림이 있는 에세이>를 올해 봄 다시 쓰기
시작 知人들에게 틈틈이 보내고 있다. 120편 부터 여러 벗님과 함께 보고 읽을 기회를 각고져 블로그에 올린다. 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