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정란숙의 그림이 있는 에세이 134

뉴도미닉 2009. 8. 23. 23:54

 

 

 

                            명제: 여름 1981년작 10 F Oil on canvas


 딸이 운전하는 차 속에서 깜박깜박 졸다가 하늘을 보면 잔뜩 구름이 끼어

있고 간간이 뿌리는 빗방울이 시야를 가리지만 시원하게 뻗은 도로 옆을

여유를 가지며 바라본다. 청록의 물결이 가득한 산하는 상큼한 풀냄새를

 풍기며 열어놓은 차창으로 들어온다. 비가 개인 이른 아침의 공기는 뭐라

말 할 수없이 운무에 청량하다. 멀리 임진강 변의 풍경이 물안개에 가려

 그윽하고 통일 전망대는 싸여 아득히 먼 나라의 성(城)인 듯 신비에 가려

                                   져 있다.

 


  혼자 운전을 하고 갈 적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눈앞에 새록새록 나타나

  참! 좋다 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한다. 혼자서 앞만 보고 달려갈 적에는 보

  이지 않던 풍경이 옆자리에 느긋하게 앉아 마음을 열고 바라보니 나에게 다

      가온다. 뭔가를 느끼고 그들의 존재감을 알게 되는 것은 결국은 관심이 아닐까?

                                  귀 기울여 들어주고, 바라봐 주고, 눈을 맞춰주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

    나 풍경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딸도 좋은지 아침 공기가 이렇게

상쾌하고 신선한 것인지 몰랐나보다. 언제나 아빠한테  갈 적에는 새벽에

      나와야겠다고 한다. 똑같이 보이는 풍경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환경과 시간에

    보느냐에 따라 각각의 의미와 아름다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실감하며

                                  바라본다.

 


  자연은 스스로 조절 할 뿐 그것을 스스로 허물지는 않는다. 낮 동안 분주한

일상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문명의 이기로 탁해지고 지쳤을 자연이 밤이

 주는 정화의 시간에 자신들을 추슬러 나무는 더욱 청청하게 길섶꽃들은

  더욱 화사하게, 강은 유유히 흘러서 새로운 강물을 받아들이고 흘러가게

 는 것이다. 멀리 임진강 너머로 보이는 북한의 민둥산도 초록이 물들어 산

  마루는 아침 안개로 운해에 떠있는 성(城)처럼 보인다. 자연은 누가 뭐래도

   자신들이 가진 고유한 특성을 버리지 않고 자신들의 본분에 충실해서 언제나

                                  우리에게 삶의 활력소가 되게 해준다.


    꼬박 날을 새우며 제사음식을 만들고 산소에 가져갈 것을 그릇에 담아 정리한

   다음 1시간 정도 쉬고 새벽미사를 봉헌하고 그 다음으로 자유로를 달려 남편

   의 산소에 다녀왔다. 10주기인 올해는 아들이 없고 딸도 연극공연 때문에 저

    녁에 제사를 모시지 못해 산소에서 간단하게 10주기 재(齋)를 올리기로 해서 

    밤새워 음식을 장만해 가지고 가서 진설을 하고 연도를 바치면서 조금은 쓸쓸

     한 10주기라는 생각을 했다. 해마다 가족들을 불러 제사를 모시고 저녁을 먹고

                                  밀린 이야기도 했었는데 아이들이 함께 하지 못하니 부르지 않았다.

                                  남편도 쓸쓸 했을까?


      눈에서 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가족이라는 인연도 점점 엷어

      져갔다.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오는 동안 남편으로 인해 이어져 왔던 많

     은 인연들이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하나씩 둘씩 멀어져가고 내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슬프기도 하고 분노로 내 마음이 많이 할퀴었지만 그게 세월이 지

      나니 다 부질없는 허망이었다는 생각이다. 이제 남편도 내 마음 저편에 두고자

      한다. 산다는 것은  지금 이 시간 내게 닥쳐온 순간순간 의 새로운 삶이다, 이

       새롭게 다가오는 내 몫의 시간에 예전의 기억들로 나를 버려두고 싶지 않다.


     해마다 남편의 기일 즈음이면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비도 자주와 저녁 먹자고

                                   친척들을 부르는 것도 조금은 부담스러웠었다.

                                   나와 아이들에게나 의미가 있는 날이고 가족이라는 인연의 깊이를 새겨보는 날

                                   이지만 .........


태풍 때문에 비가 온다고 했었는데 비가 내리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딸은 아빠가 우리들 오는 것을 바라고 비도 멈추게 하고 눈 도 안 오게 한다고

                                   말을 한다.


     생각해보니 지금껏 산소를 오갈 적에 바로 전까지만 해도 비가 억수같이 쏟아

      지다가도 산소에 가려고 나서면 햇빛이 나고 집에 올 즈음이면 비가 쏟아졌다.

                                   눈이 와도 산소를 오고가는 시간에는 오지 않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었어도 가족들이 보고픈 간절한 마음에 비도 눈도 멈추게 한 것일까?


    작업하는 게 있어서 늦게 까지 며칠동안 잠도 못자고 꼬박 하루를 장을 보고

                                   음식을 했더니 입안이 다 헐어 버렸다. 혀도 다시 아프다.


** 여름: 오래전의 그림이다. 장미꽃 한 다발을 사가지고와 복숭아를 놓고 그린 

             작품이다. 한참 그림 공부를 하며 진솔하게 열심히 그렸던 기억이 새롭다.

          배경은 사진처럼 어둡지 않고 진한 초록색인데 사진에서는 까맣게 나와

                                 버렸다.

 

                  2009-08-07

                  그림이 있는 에세이134

 

 

                     위 그림과 글은 畵家 丁蘭淑이 119편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중단하였던 <그림이 있는 에세이>

                     올해 봄 다시 쓰기시작 知人들에게 틈틈이 보내고 있다. 120편 부터 여러 벗님과 함께 보고 읽을 기회를

                     각고져 블로그에 올린다.  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