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란숙의 그림이 있는 에세이 135
명제: 여심 2009년 작 6 F Oil on canvas
매양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헉헉 거리며 지내다 여름을 보낸다. 딱히 뭘
한 것도 아니건만 시간은 화살같이 날아가 버렸다. 예전처럼 죽어라 작품에 매달리지도
않았고 여기저기 마음 가는 곳으로 다니지도 않았다. 하루가 전부인 것처럼 살았지만 그
렇다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이며 진솔하게 살았는지도 모를 만큼 변화를 갖지 않고 살
았던 것 같다. 스스로 깨우치며 변화를 가져보려는 노력은 않고 날씨가 덥다는 핑계와 마
주치는 일상에 조금만 신경을 써도 피곤해지는 몸의 변화에만 민감해져서 나 스스로에게
피곤한 느낌을 가져 무력하게 보내버린 여름이라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늘 새롭게 달라져 간다는 것을 얼마 전 친구와 배를
타고 찾아간 영종도 앞 바다에 떠있는 장봉도 섬에서 그리고 성당 캠프장이었던 평창 국
립청소년 수련원 넓은 숲에서 느낄 수 있었다. 땡볕이 내리쬐는 갯벌이 끝없이 널려있던
해변에서 물때를 못 맞춰 간 까닭에 바닷물에 발을 적셔보지 못하고 그날따라 제일 더운
날이라 그늘에서 바라보기만 해서 아쉬웠지만, 자연의 시간은 나와는 상관없이 끊임없이
보이지 않은 힘에 의해 변해가는 것을 바라봤다. 백사장을 거슬러 올라오던 작은 참게 한
마리가 집을 못 찾아 뙤약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모래언덕을 기어오르다 떨어지기를 반복
하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소나무 숲이 있는 절벽 밑 그늘에 자리를 깔고 누워 바람을
이야기를 하다가, 태양의 움직임에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기며 가슴 깊이 들어오는 시원한
맞으며 멀리멀리 물이 빠져 나가 시커먼 갯벌만 드러났던 해변과 구름 한 점 없던 파란 하
늘의 눈부심을 내 눈에 담았다.
겹겹이 둘러싸인 초록 산의 정경과 공기도 상큼한 너무나 아름다웠던 수련원의 밤하늘, 볕
이 쏟아지고 달이 하얗게 떠있어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은 내 마음에 조금은 틈
새가 생겨서 넓은 바다와 수풀 우거진 초록 산의 정기를 담을 수 있어서 좋았고 내게 말을
걸어오는 자연의 오묘함과 시간의 흐름을 함께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시간은 모든 것을 다 변화 시킨다. 자연의 분주함이 사계절의 변화를 오감으로 확인하게
하며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개인의 삶이 다르듯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의 모양과 속도도
다르다. 조그만 작업실에 틀어박혀 잊고 있던 자연의 신비함을 바라보니 내 마음에 따사로
운 평화가 산마루를 타고 불어오는 한 줌 바람에 실려 내 온몸을 감싸 안는다. 소리 내어
노래를 흥얼거리고 발걸음에 리듬이 실려 춤을 추듯 사뿐사뿐 걷는다. 함께 가자고 부추기
던 “가서 좀 쉬어라 ”하던 동행들의 마음이 고맙게 느껴졌다.
순간순간 날마다 비슷비슷한 일상에 젖어 살다가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함께 동행
을 해줄 이가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현실 적으로 열린 가슴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면
오히려 불편 할 수도 있겠다는 것을 수련원에서 짧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새삼 확인을 하
였다. 혼자 사는데 익숙한 사람이어서 일까? 한 방에서 서로 다른 연령대의 사람 여러 명이
생활하는 게 쉽지 않았다.
세상을 살다보면 말 한마디 하지 않았어도 눈빛으로, 가슴으로 소통을 할 수 있어 좋은 사
람이 있는 반면에 까닭 없이 미워지는 사람도 있다. 또한 같은 사람에게 좋은 감정을 갖다
가도 싫어지는 감정이 일어나는 것 은 어인 연유인지?
내 마음이 변하면 상대에게 다가가는 마음까지도 변해서 싫어지고 미워지는 것을 느끼며 내
마음이 변한 이유가 상대가 미워서라기보다 상대가 만들어내는 상황이나 환경 그리고 태도
에 미움이 실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나 아닌 사람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보
여 질까? 생각을 해보았다. 다른 사람을 이해 한다는 것은 내 마음 바탕에 깔려있는 태도이
지 능력이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이 자기 자신 안에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거듭 확인하고
나이 들어 갈수록 자기 고집과 아집으로 타협하지 않으며 자기를 내세우려하고 섬김을 받으
려 하는 것을 보며 겸손하게, 지혜롭게 행동 하고 사랑이 있는 마음으로 배려하는 것 또한 얼
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실감했다. 저마다 각자의 삶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 서로를 섬기며 함께
하는 것이 이 세상이다. 개개인의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 하는 법을 배우는데
는 많은종교를 떠나서 지식과 교양을 떠나서 시간이 걸린다. 서로의 생활환경이나 정신연령
이 비슷하고 받아들이고 바라보는 마음이 있어야 공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껴본 날들.
** 여심: 바구니에 여인의 마음을 담았다. 바늘 쌈지에서 바늘을 꺼내 손에 골무를
끼며 수를 놓으며 꿈을 꾸었을 여인의 마음을 담아 그렸다.
2009-08-30
그림이 있는 에세이135
위 그림과 글은 女流畵家 丁蘭淑이 119편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중단하였던 <그림이 있는 에세이>를
올해 봄 다시 쓰기시작 知人들에게 틈틈이 보내고 있다. 120편 부터 여러 벗님과 함께 보고 읽을 기회를
각고져 블로그에 올린다. 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