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의 사위 사랑 이야기
장모님의 사위 사랑 이야기
1968년 12월 22일 임진강 건너 긴급공사 관계로 하루를 보내고 해가 넘어가서야 출발 서울로
운전을 하며 어두운 길을 달린다. 문산을 지나 봉일천을 지척에 둔 길에서 초등학생 정도의 남매가
길가를 따라 뛰어오는 것이 자동차 전조등에 비춰 시야에 들어온다. 바로 그들 앞에 지난여름 장마로
노변이 약간 파인 곳이 나온다. 남동생은 살짝 뛰어넘는데 누나는 파인 곳을 피해 돌아서 길 안쪽으로
갑자기 방향을 바꿔 뛰어들어온다.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 "끽" 하고 타이어의 마찰음과 동시에
"쾅"하는 둔탁한 소리가 난다. 사방은 캄캄하다. "아...나에게 올 일이 오고 말았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차 문을 연다. 길에 쓰러진 어린 여학생이 보인다. "엉엉..." 우는소리가 들린다. 봉일천 병원에서
X-ray 검사를 하는 도중 연락을 받은 부모가 옆에서 초조하게 응시하고 있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
타박상만 좀 있으니 약만 바르면 되겠습니다" 의사의 목소리가 그렇게도 반가울 수가 없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며 집에 도착하니 슬픈, 아주 슬픈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장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비보이다. 지금도 집안에선 다 그렇게 말한다. 장모님이 그 아이 대신 돌아가셨다고...
우연한 일치가 아니라고 지금도 나는 믿고 있다.
1주일 후 장례를 모신 후 그 아이를 찾아간다.
논두렁에 물을 가둔 넓은 얼음판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추수감사절 날......
진해-마산 지역 공사장에 급히 다녀올 일이 생겼다. 새벽 일찍 커다란 Station Wagon을 몰고 현지에
들려 일을 끝내고 추풍령을 넘어오는데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추수감사절에 눈이라...
몇 십 년 만의 일이다. 날이 어둑어둑할 때 평택을 지나 오산 방면으로 가는 도중에
긴 다리 위에 다다른다. 순간 차가 제어가 안 된다. 제멋대로 미끄러져 간다. 20센티가 되는
2개의 철 파이프 다리 난간을 받아 부스고 차가 미끄러지며 두 바뀌를 돌아 길옆 논두렁으로 처박혀
차가 정지한다. 안경이 안 보인다. 차 바닥에 떨어진 안경을 쓰고 온몸을 움직여본다. 아무 이상이
없다. 눈은 점점 내려 10여 센티가량 쌓인다. 후에 안 일이지만 다리 위에선 녹은 눈이 빨리
얼어붙어 빙판이 된다는 사실...물론 박살 난 차는 폐차했다.
내가 출장 가는 전날 진도화가 꾼 꿈 이야기는 집에 와서 처음 들었다. 꿈속에서 내가 강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장모님이 "세연(큰아들) 아빠 물에 빠지겠다. 빨리 구해라."라고 소리를 치셔서
줄을 던져 구해냈다는 이야기. 장모님이 돌아가셔서도 사위를 두 번째 구해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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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지나고 6일에야 용미리에 있는 장모님 산소를 찾았다. 처형 내외 그리고 우리 둘...
큰 처형은 브라질에 이민 가신지 수십 년이 된다. 1968년에 작만 한 영구관리를 해주는
50평 되는 묘지이기는하나 딸만 셋에 아들이 없어 우리가 산소를 돌보고 있다.
우리 죽기 전 화장 할 예정이다.
묘지 번호
묘비 - 경주김씨 예숙의 묘(慶州金氏 禮淑之墓)
사위 김형태 신임철 조남주
딸 이규희 규복 규칠
외손 김용진 신재훈 조세연
동서가 제주이고 진도화와 묵념 중. 처형은 종교 관계로 마음속으로만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