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그림이 있는 에세이138

뉴도미닉 2009. 11. 1. 12:20

 

 

 

      2009-10-22

      그림이 있는 에세이138

 

       아래 그림과 글은 女流畵家 丁蘭淑이 119편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중단하였던 <그림이 있는 에세이>

       올해 봄 다시 쓰기 시작 知人들에게 틈틈이 보내고 있다. 120편부터 여러 벗님과 함께 보고 읽을 기회를

       만들고자 블로그에 올린다.  돔


 

 

 

            

      명제: 정 (靜) 1999년 작 10F Oil on canvas

 

 

  며칠 사이에 얼굴을 스치는 바람의 온도가 몹시 차다. 옷깃을 여미게 하고 머리카락도 날리게

하는 것을 보면 서서히 가을이 깊어간다고 신고를 하는 것 같다. 끝없이 내리쬘 것 같던 한여름

뙤약 빛이 한풀 꺾이고 바라보면 언제까지나 가지 끝에서 싱그러움을 만끽할 것 같던 진초록의

잎새도 조금씩 그 빛을 달리하고 있다.

바래고 물들어져 한 잎 두 잎 땅바닥에 뒹굴고 있다.

그 바스락 거리는 잎새가 사람들의 발짓에 뭉개지는 것을 보면 내가 뭉개지는 것 같은 아픔에

온몸에 전율을 느낀다.


  바람은 가벼워서 만져지지도 않고 느끼기엔 약해보이지만 뭉치바람이 불면 모든 것을 날려버릴

듯 거대한 능력을 보인다.

내 마음에도 많은 바람이 불어오고 스쳐 지난다. 무풍지대 같은 평온한 바람이 불어 그 바람에

편승해 즐기기도 했고 사나운 바람에 내동댕이치듯 튕겨져 일어서지 못하고 납작 엎드려있기도

했다. 바람에 대항해 자신의 그림을 그릴 줄 모르고 그냥 죽어지내고 있다.

목표가 없어지니 모든 게 시들하고 재미가 없다. 작업도 하기 싫고 글도 쓰기 싫어 종일 누워

책을 읽다가 걷기 하러 잠깐 화실 밖을 나와 파란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고 교외로 나가 길섶에

노랗게 피어있는 노란 들국화를 한 아름 꺾어와 하얀 백자에 꽂아놓고 쳐다보며 차 한 잔 홀짝

마시며 망연히 앉아있다.

눈 뜨면 틀었던 오디오도 켜지 않은 게 얼마만인가? 모든 게 부질  없다는 생각이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스쳐 지나는 바람에 고마움과 시린 고통을 느끼기에 더없는 요즘의 가을

하늘은 그야말로 구름들의 천지다. 바람에 자신의 모습을 바꿔가는 구름은 모든 것을 받아 들여

하늘에 그림을 멋지게 그린다.

금빛 물결의 가을들판을 지나는 바람을 바라보면 출렁이는 금빛 이삭과 끝없이 넓게 펼쳐가는

구름의 모습에 온갖 시름이 사라진다. 사납게 불어오는 바람에 거대한 포말을 일으키며 달려드는

파도를 구릉이 있는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노을 진 해변에 물별이 반짝이고, 은빛 바다와 맞닿아

펼쳐지는 구름의 모습을 보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크고 작은 전시가 있어 자료도 내야하고 작업도 해야 하지만 기획 되었던 초대전을 취소하고

얼마 전에는 추진하려 했던 내년 달력도 회사의 사정으로 취소를 하고나니 사는 게 왜 이런가

싶을 정도로 막연하게 느껴지고 기대가 깨졌을 때의 상실감이 나를 이렇게 침잠하게 한다.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 하는 심란한 마음이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없게 한다.

산다는 건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구차하고 심란하며 복잡함 속에서도 참고 견디며 버텨내는 일

일 것이다. 얼마 살지 않았지만 인생의 지천명을 지나온 삶이다보니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없으면 없는 대로 넉넉하면 넉넉함 그대로 따뜻한 마음을 갖고 살 일이다.

바람 부는 곳에서도 애써 고요를 찾아야하고 마음에 피어나는 파도를 애써 잦아들게 다스리면서..

고난의 비바람이 없이 성숙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고 하는데 나의 영혼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은

부딪치는 시련과 고통을 성숙의 디딤돌로 삼아 잘 극복해 나가길 바라실까?


  마음으로 생각해냈던 일들이 구체적으로 내 몸짓에 나타나듯 최선을 기대하면 최선은 얻을 수

있는 게 인생이 아닌가?

인생에 있어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아 열심히 매진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 일 것이다.

어떻게 바라보고 살 것인가 무엇을 생각하며 변화의 길을 가야 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내 의지에

달렸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에 급급해 조바심을 내면서, 느끼고 체험하는 잣대에 따라 나만의

생각대로 사물을 바라보고 해결 하지 말고, 좀 더 깊고 넓게 보며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안목

을 키워 보이지 않은 가치를 찾아내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볼 일이다.


작업을 해야겠다. 좀 더 의식이 있고 변화된 좋은 작업을 해야겠다. 자연스럽고 꾸밈없이

그리고 글도 쓰련다. 그때그때 보고 느끼는 단상들을 게으름 피지 말고 ........

좋은 삶이란 꾸밈없이 건강도 다스리면서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아침이 되었다. 바람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분다. 칼칼하다.

바람 부는 대로 휩쓸릴 것이 아니라 마음 추슬러 꿈을 꾸준히 품어 가야겠다.


 

정(靜):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바구니에 카라 꽃을 그려 넣었다.

          바구니가 만들어질 때의 어수선함이나 잡다한 일상을 깨끗한 꽃

          몇 송이로 맑고 고요함을 표현 해보았다.

          바닥의 짙은 감청색은 일렁이는 내 마음의 바람을 잠재우는

          표현의 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