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에세이139
2009-10-26
그림이 있는 에세이139
아래 그림과 글은 女流畵家 丁蘭淑이 119편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중단하였던 <그림이 있는 에세이>를
올해 봄 다시 쓰기 시작 知人들에게 틈틈이 보내고 있다. 120편부터 여러 벗님과 함께 보고 읽을 기회를
만들고자 블로그에 올린다. 돔
명제: 가을날에 1998년 작 30F Oil on canvas
순교자 묘역 제대 뒤편에 있는 모과나무에 몇 개 남은 모과와 채 떨어내지 못한 이파리가 금빛 가을 햇살을 쬐며
신부님 말씀을 듣고 있는 순례자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재치 있게 때론 감정을 실어 을묘, 신유박해 때 순교하신 순교자들의 삶을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이야기를
해주시는 신부님 머리위로 황금빛 빛의 조각이 곱게 내려앉은 것을 나무그늘에 앉아서 본다. 따스하게 내리쬐는
가을 햇살아래서 두 팔을 벌려 맞아주시는 예수님 옆으로 줄지어 뉘어있는 묘역을 보면서 순교자들의 삶을 듣는
한낮의 고즈넉함이 참으로 은혜롭다.
사노라고 잡다한 일상에 묻혀 툭 트인 하늘도 곱게 물이 들어가는 산도 가을걷이가 한창인 금빛 들녘도 접하기
어렵고 바라보기 힘들었는데 성당 식구들과 함께 서울에서 멀지않은 경기도 이천에 있는 어농성지(於農聖地)에
왔다. 조금만 시간을 내고 여유를 가지면 아름다운 전원풍경을 바라볼 수 있고 상큼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
이곳 성지엔 가을이 한창이다.
길섶에 뒹굴고 있는 호박, 주렁주렁 매달려 색이 퇴색되어가는 조롱박 들 사이로 산색이 다른 산들이 노랑 빨강
주홍빛으로 서로 어우러져 그림 같고 한잎 두잎 떨어져 바스락 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걷는 십자가의 길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결실을 맺지 못하는 나의 삶이란 시간이 밟혀서 사라지는 듯 느껴져 아득하다. 성지 한가운데
초록빛 잔디가 인상적이었는데 신부님 말씀은 보리가 여린 싹을 틔어 자라고 있단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울긋불긋 곱게 물들어가는 산과 조그맣고 아담한 하얀 성당, 거기에 초록 보리밭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자연은 순리에 의해 멈추거나 끝나는 일이 없이 스스로 찾아와 자기 몫을 다하고 조용히 물러간다.
그 자연에 순응하여 저마다의 생명들이 자기 몫의 삶의 시간들을 살아내고 조용히 결실을 맺어 그것을 내보이는
지금 나를 돌아보면 많이 부끄럽다.
내게 다가왔던 많은 시간들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고,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자제하며 버릴 줄 모르고,
바라는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기도 생활도 안일하게 하면서 이게 뭔가?
한탄하며 살았던 날들이 순교자들의 신앙과 삶을 들으니 내안에 회한이 한없이 출렁거리며 온다.
신부님은 성지에 순례를 오는 까닭은 성인들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그것을 본받고자 찾아오는 것이라고 하셨다.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나뭇잎처럼 떠나지 않고서는 변화를 못 느끼고, 자신의 환경이나 생각에서 벗어나 변화를
받아들여야 또 다른 세계가 열리고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고 하셨다.
그 옛날 새로운 학문을 신앙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지키고자 갖은 고생을 하며 중국에 가서 한국교회의 탄생을
알리며 성직자를 조선에 영입하는 역할을 했던 윤유일 바오로를 비롯해 최초의 선교사이셨던 주문모 신부님을
비롯한 17인의 순교자들의 믿음이 순교이었듯이 믿는다는 것은 진정한 죽음을 의미한다. 나의 생이 다해 죽는
것처럼 내 목숨 까지도 내놓을 그 어떤 것에 대한 사랑이 죽게 할 수 있는 믿음. 그 믿음의 결실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생각하게하고 생각을 표현하고 그 표현을 신앙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증거하며 죽음을 택했던 사람들의 아름다운
떠남은, 버리고 비우는 대자연의 섭리의 아름다움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수단 자락 밑으로 접혀진 청바지를 입고 파머를 하신 신부님!
복음을 낭독하실 때 구어체로 읽으실 때 뭔가 다르다 했더니 작곡을 하시고 연주를 하시는 신부님이셨다.
읊조리듯 읽으시고 들을 귀 가 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마음이 열려있으면 알아들을 수 있게 편하고 즐겁게 강론을
하시던 신부님은 청소년, 청년들을 위한 신앙의 못자리 지킴이를 하시고 계셨다.
사람이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 하고 서로 통교하는 것은 하느님 뜻에 가까이 가려는 바람이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의지를 주님께 내맡기는 것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살이에서의 나의 삶이란 모순투성이어서
부끄럽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나를 오늘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성당 식구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걷는 순례의 발걸음이 참으로 좋았다.
마음이 힘들고 바람을 쐬고 싶을 때 혼자서 나서서 찾았던 성지가 아닌 함께 하는 순례길이 은혜로웠다.
그림자도 혼자가 아니고 함께 가고 있다고 앞사람의 그림자가 내게 이야기한다.
“천만번 죽을지라도 저 십자형틀에 묶이신 분을 모독할 수는 없소”하며 마지막 신앙고백을 하며 죽음을 택했던
윤유일바오로처럼 나도 내안에 하느님이 머무실 자리를 확실히 내놓은 삶을 살고 싶다.
** 가을날에 : 가을 국화 한 아름 바구니에 담았다.
국화를 그리는 동안 향기가 작업실 가득해 혼자 행복했었다.
결실의 계절을 상징하는 해바라기, 모과, 조롱박들을 화폭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