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그림이 있는 에세이152

뉴도미닉 2010. 12. 3. 11:10

 

 

              2010-10-02

              그림이 있는 에세이152 

 

               

         명제; 꽈리의 꿈

 

          사각사각 머리를 자르는 미용사의 가위질 소리만이 정적을 가르는 나른한 오후 한때, 까만 승용차 한 대가 

             미용실 문 앞으로 바짝 다가와 서더니 운전석 문이 열렸다. 나이가 제법 드신 어르신 한분이 내리시더니

             뒷문을 열어 몸이 불편한 아주머니 한분을 내리게 하며 아기 다루듯이 한다.

             조심조심 부축해 의자에 앉게 하시고는 조금 있다 데리러 오겠다고 하시며 미용사에게 머리손질 좀 해달라고

             하시며 가신다. 파머를 하러와 투명 비닐 캡을 쓰고 의자에 앉아 시간을 죽이며 창밖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가 왜 저렇게 주차를 할까? 하며 주시하고 있는데 초로(初老)의 부부가 힘겹게 미용실에 들어선 것이다.

 

             부인이 걸음걸이도 불편하고 말도 어눌해 보이는데 남편이 다정하게 어깨를 감싸안아주며 의자에 앉히고는

             볼일을 보고 오겠다며 나가신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사랑은 표현 되는 것보다 표현하지 못한 것이 훨씬 많고, 나이 먹은 사람들은 더욱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않은데, 병색이 완연한 부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데려와 곱게 단장을 해달라며 어린아이 달래는 것 마냥

             웃으며 얘기하는 모습과 조용히 순응하는 부인의 헝클어진 매무새를 훔쳐봤다. 부부란 어떤 관계일까?  

 

             부부란 서로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중에서 함께 바라보고, 함께 있기 위해, 그리고 서로 의존적이 되어

             관계를 이어가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해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생각을 한다.

             배우지 못하고 받아보지 못한 사랑은 행하고 실천 하는데 서툴 수밖에 없고 어딘지 부족하여 자연스럽지

             못하고 바라보기에도 불편하다. 자연스럽게 포옹하며 수발하는 남편의 뒷모습이 아름답고, 내 옆에 앉아

            “저번 날에는 혼자 일어서려다 침대에서 떨어져 꼼짝 못하고 몇 날을 있다가 나왔다”며 미용사에게 중얼

             거리듯 말하는 부인의 슬픔이 베인 눈망울이 내 마음에 박힌다.

             보살펴야 하는 사람을 가지게 된 사람이 왜 시간과 생활을 함부로 할 수 없는지를 보면서 그냥 함께 해 주는

             것 자체로 보살핌을 받는 사람이 느끼는 행복은 사랑 그 자체일 것이라 생각을 했다. 

 

                   내 아버지도 치매에 걸려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수발하시면서 보살핌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셨었다.

                   보살핌을 실천하는 사람이 그 존재 자체로 얼마나 위대해지고 바라보기 좋은 모습이었나를 생각해 본다.

                   치매에 걸리셔 서서히 삶의 끈을 놓아버린 11년을 한결 같은 마음으로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시고

                   후회 없는 사랑으로 어머니를 떠나보내셨다.

                   ‘자식들이 있는데 왜? 내가 이 나이에 감당해야하냐’고 속상해하시고, 인정을 하시고 싶지 않아 자신의 처지를

                   비관도 하시고, 무거운 짐을 혼자 메고 오르막을 올라가야한다는데 분노로 어쩔 줄 몰라 하셨다. 동정과

                   연민으로 대하시다 하루하루가 지나고, 달이 가고, 해가 갈수록 살아있어도 죽은 것처럼 사는 어머니에게 진심

                   으로 대하시고 마지막 돌아가실 때까지도 어머니가 누워 계신 침대며 주변을 냄새하나 안 나게 깨끗하게 처리

                   하시고 흐트러진 어머니의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이지 않은 사랑을 하셨다. 그것이 부부라는 관계여서일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기에 남자 여자를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게 하시고

                   서로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가르쳐 주시고 깨달아 완전한 사랑에 이르게 하셨다. 눈과 눈이 마주치고

                   영혼과 영혼이 함께하고 서로를 받아들이고 쓰러질 것 같은 위기와 고통이 와도 일으켜 세우고 보듬어 주는

                   것 은 서로의 사랑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부부라는 인연의 끈에 이어져 있기 때문 일 것이다. 부부라는 끈으로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사람들만이 갖는 애뜻함 일 것이다.                       

 

                   파머를 다하고 미용실을 나서면서 아주머니를 바라봤다. 아주머니는 미용사의 손길에 머리를 맡기며 졸고 계신다.

                   아저씨께서도 처음부터 부인의 아픔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수발 하셨을까?

                   세월이 흐르면 자식은 없고 남는 것은 늙은 부부밖에 없다는 말이 느껴진다. 시간은 두 분이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많은 것을 변화 시켰을 것이다. 그 변화가 바라보기에 아름답게 보여지기 까지 얼마나 많은 얘기를 담았을까?

                   생각해 봤다. 언젠가 어느 책에서 읽었던 “분노가 이해로 변하는 순간에 돌봄이 시작된다.”글을 떠 올리며.... 

 

                   꽈리의 꿈 :

                하나의 씨앗이 시간의 흐름이란 우주에서 적당히 취해지는 햇빛과 땅의 받아들임에

                   커다란 나무가 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꽈리 주머니 속의 수많은 씨들이 또 다른 세계로 향한 꿈을 가지고

                   터질 날만 고대하듯이.......

  

 

 

  

 

                위 그림과 글은 作家 丁蘭淑이 119편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중단하였던 <그림이 있는 에세이>

                작년 봄 다시 쓰기 시작하여 知人에게 틈틈이 보내고 있다. 120편부터 여러 벗님과 함께 보고 읽을 

                기회를 갖도록 오늘은 152편을 올린다.  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