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에세이157< 이태석 요한 신부 이야기>
2010-12-26
그림이 있는 에세이157
명제: WORK 1987년 작 10F Oil on canvas
성당에서 주일 미사를 끝내고 ‘울지마 톤즈’를 상영했다. 아프리카 수단에서 의료선교를 하시다 대장암으로
몇 달 전에 돌아가신 (고) 이 태석 신부님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다. 많은 사람이 성당에서 제공한 잔치국수를
먹고 훌쩍이며 영화를 봤다. 나는 신부님이 생전에 ‘생활성서’에 연재하신 글을 2년 동안 읽었기에 신부님께서
한국에 휴가차 오셨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발병 소식을 듣고, 곧 돌아가신 것을 평화신문에서
읽고는 가슴이 아려와 혼자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했었다. 오늘 영화를 보니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도 감동이고, 한 사람의 의인의 행동이 많은 사람의 닫혀 있는 마음을 열리게 하는 것을 보며 ‘사람의 마음
속에 많은 계획이 있어도 이루어지는 것은 하느님 뜻’이라는 <잠언>의 구절이 생각났다.
자기가 하고 싶은 소명을 어떻게 이루고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 영화를 보고 저녁엔 예술의 전당 리사이트홀
에서 ‘첼로와 가야금의 만남’ 연주를 들었었는데 전혀 상관이 없는 영화와 연주가 자꾸 겹쳐지며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소리의 울림이 전해지지 않는다면 소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톤즈의 어린이들이 리코더로
‘사랑해 당신을’을 연주하고, 우리말로 어설프게 노래를 부르며 흐느껴 우는 모습이, 가야금과 피아노와 어울려
연주하는 첼로 음과 겹쳐지고 한국전쟁에 관한 영상이 스크린에 펼쳐질 때는 수단의 가난한 현실이 겹쳐졌다.
많은 날을 연주하기 위해 수없이 같은 음을 반복하며 연습했을 젊은 연주자들의 보면대에 펼쳐진 악보를 보면서,
기타 하나로 수단에 가져갈 약품과 학용품을 마련하기 위해 후원자들 앞에서 새카만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소박하게 웃으면서 악보 없이 노래를 부르시던 신부님 모습과 겹쳐졌다. 그림으로 말하면 비구상인 연주는 젊은
첼리스트의 국악기와의 만남인, 음악적 실험이기도 해서인지 난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선물처럼 들려주던 구노의 아베마리아와 피아졸라의 망각(Oblivion)의 선율이 다가올 뿐이었다. 귀에 익어서일까
언어로 표현되는 말은 생각을 전하는 데 있고 그 의미를 알아가고 깨달아가며 이해되고 받아들여진다면, “말을
제거한다면 소리는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소리가 의미를 전달하지 않을 때 그것은 빈 소리에 불과하다.” 했던
성 아우구스티노의 글이 생각나면서 짧지 않은 연주와 영화가 자꾸 비교되었다.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전쟁의 폐허 속에 있는 수단의 사람들과 어린이들에게 행복을 전해
주며 대가를 바라지 않은 젊은 사제의 순수하고 연민에 가득 찬 우직한 사랑과 자신의 잠재력을 더욱 개발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길로 가는 젊은 연주자들의 부단한 노력을 보면서, 진정 만나야 하고 만나지 않고는 안 되는 그 어떤
것을 찾아야 한다는 숙제를 갖게 되었다.
살아가노라면 언제나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이것을 할 것인가? 저것을 할 것인가? 매양 갈림길에서 우왕좌왕
하다가 자신이 결정 한 것에 후회하고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에 미련을 갖는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삶 안에서
선택의 순간이 의외로 많이 주어진다는 것을 안다. 그 선택을 해야 할 때 내가 선택한 길에 만족은 못한다 하더라도
후회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하느님의 이끄심에 아프리카 그 험난한 오지에 사랑을 주고자 자신의 몸을 불살라
버린 사제는 죽으면서까지 수단의 친구들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음악에 대한 젊은 열정으로 선택을 하고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하는 첼리스트와 그보다 훨씬 많은 세월을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온 나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가 선택한 것에 고민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의 선한 마음이 어떻게 깨어 있고, 어떻게 열려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행하는 것은 행하는 그 사람 자신의 몫 일
것이다.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삶 안에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가고 열린 마음이 되어 사랑의 물결을 만들어
내고, 밑거름이 되어 멀리멀리 퍼져 나가게 하는 것은 그들만의 몫일 것이다. 그 선택의 몫이 열려 있고 깨어있음이
많아질 때,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지고 세상은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WORK: 순수하게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몸살 하며 그릴 때의 작품이다.
한 줄 한 줄 댓살을 헤아리며 그리다 틀려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했던 작업이었다.
장인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그냥 대나무일 뿐이지만........
무엇이든 쓰임이 있다.
그림에 글을 실은 作家 丁蘭淑이 119편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중단하였던 <그림이 있는 에세이>를
2009년 봄 다시 쓰기 시작하여 知人에게 틈틈이 보내고 있다. 여러 벗님과 함께 보고 읽을 기회를
갖도록 오늘은 157편을 올린다. 돔 ***
이태석 요한 신부 이야기
이태석 신부와 수단 어린이들, 그리고 성모병원 병상에서
1월 14일이면 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리던 이태석[1962-2010] 요한 신부가 선종한 지 만 1년이 된다.
10남매 중 아홉째로 태어난 부산 출신으로 인제의대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치고 광주 가톨릭대를 거쳐
신부가 되었다. 신학 대학 시절 수단을 방문한 인연으로 수단 톤즈 마을에서 8여 년간 봉사활동을 하였다.
어린이를 위한 학교와 주민을 위한 12개 병실을 갖춘 병원을 지어 헌신적인 교육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주민을 위한 예방접종과 진료활동을 하였다. 잠시 한국에 들러 건강검진에서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영영 수단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48년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이 신부의 수단 활동을 돕기 위해 2004년 시작된 수단어린이장학회는 2007년 사단법인으로 전환했으며,
이 신부의 선종 이후 1년간 회원 수가 1천여 명에서 6천여 명으로 급증했다.
이 신부의 수단 활동과 이 신부 선종 이후 수단 현지 딩카족의 슬픔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는 KBS 부활절 특집으로 만들어졌다가 극장에서도 상영돼 24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 인간이 인간에게 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 한 남자의 이야기 >라는
가슴을 적시는 감동적인 다큐멘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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