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에세이 167
2011-07-17
그림이 있는 에세이167
명제: 여름날에~~ 부채그림 2010년 작 : 화선지에 수채화
그림/글: 작가 정란숙
그치지 않을 것 같던 장맛비가 물러가고 불볕더위가 시작 되었다. 볼 일이 있어 잠깐 밖에 나갔다가 옷을 흠뻑 적실정도로 땀에
젖어 들어와 씻고 선풍기를 틀었다. 한줌 불어오는 바람에 비길까싶지만 그래도 빙빙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에 땀을 식히며
KBS FM에서 나오는 국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그 옛날 앞뒤가 트인 대청마루에서 대나무 돗자리에 앉아 미숫가루를 풀어
시원하게 한 대접 들이키며 듣는 가야금 소리는 아니지만 듣기 좋았다.
음악은 들뜬 마음을 가라 앉혀주고 뜨거운 정열을 일깨워주고 삶에 활력소를 주는 아름다운 선율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고요한
방에 앉아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와 끊어질듯 하면서도 이어지는 해금 소리와 우리악기들의 장엄한 연주를 들으며 참 좋구나!
아름답다는 것은 색깔이 곱고 얼굴이 예쁘고 아름답게 들려오는 선율이 아니라 내 마음을 어느 순간에 움직이며 감동을 주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쉼’이 주는 단어가 이렇게 편하게 다가오는 때 도.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은 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단에서 여름 호 로 발행한 소식지인데 그 안에 ‘자연을 듬쁙 담은 우리종이“ 에
관한 글이 쓰여 있다. 한국의 전통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불빛을 담은 등, 부채, 갈모, 에 관한 글이 간단하게
쓰여 있는 것을 읽으며 작년에 ’한국의 바람‘ 이라는 주제로 세종문화회관에서 부채그림을 전시했는데 초대 되어 그림을 그리며
몹시 힘들어 했던 때가 생각났다. 이야기를 담아 부채에 그려 담아내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장르가 다르고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한지의 특성을 몰라서이다.
나무의 순수함을 걸러 만든 한지로 만든 부채는 그 모양에 따라 동그란 단선(團扇) 과 접히는 접천선(摺천扇)으로 나뉜다고 한다.
내가 그린 그림은 접천선인 합죽선 으로 만들어져 전시를 했었다. 기름을 곱게 먹이고 채색을 입힌 단선도 있고, 고려시대에는
특산물로 유명한 소나무 껍질로 곱게 짠 솔 부채도 있고 선비들이나 화가들이 이야기를 담아 그려 만든 합죽선이 있다. 부채질을
한번 할 적마다“티끌세상 밖으로 몸을 벗어나게 한다.” 는 말 이 있듯 손에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주인의 기품과 풍류를 엿보게
하는 부채를 예전에는 임금이 단오 날 신하들에게 하사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런 여유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사람은 백년을 살기도 힘들지만 천년이 지나도 바래지 않은 마음을 담아두는 한지는 부드럽고 탄력도 좋지만 곱고 은은해서 여러
가지 자연염료로 물을 들여 만들어 우리생활에 쓰이는 많은 물건을 멋스럽고 품위 있고 아름답게 한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나무는 그 섬유 속에 시간을 간직 하고 있다”고 했다. 그 나무의 시간을 삭혀서 맑은 물에 풀어
한 장 한 장 떠서 말린 한지를 한국화를 하시는 선생님 들 뿐 아니라 현대미술을 하는 선생님들도 오브제로 많이 사용을 하신다.
부드럽게 찢어지고 물을 머금고 뭉쳐져서 작위대로 작업을 할 수 있어서다.
전시를 주관하시는 선생님이 주신 한지를 받아들고 작업실에 와 펼쳐놓고 몇 날을 하얀 여백만 들여다보면서 고민을 했다.
정 약용은 정조가 하사한 부용선(芙蓉扇)-김홍도가 연꽃을 그린 부채- 으로 여름을 시원하게 보냈고, 신윤복은‘연당여인’(툇마루에
걸터앉은 여인이 연꽃을 바라보고 있는 그림)으로, 그리고 많은 화가들이 목련, 사군자, 소나무 등 을 그려서 자기만의 개성을
나타냈는데 나는 어떻게 그려야하나!! 하면서 여름날 밭 어귀쯤에, 산비탈 어디쯤에서 한 줌 뿌리를 내리고 피어있는 도라지꽃을
그려보았다. 여름이 시작되고 장마가 시작될 무렵이면 하얀색 보라색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아름답게 보이는 꽃을..........
참으로 다양하게 표현을 했고, 자기만의 이야기로 그려낸 부채그림을 전시장에서 많이 봤다. 한꺼번에 많은 부채그림을 보면서
그린 선생님들을 떠올려보니 여러 가지로 그 사람의 성격이 묻어나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언제나 그림을 그리면서 생각을
하지만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소재와 은밀하게 만들어 내는 소재가 아닌 실생활 속에서 체험하며
바라보고 느끼는 것에서 소재를 떠올려 끈질기게 시도하는 노력과 인내로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생각을 해봤다. 음악이 바뀌었다.
여전히 선풍기는 혼자서 바람을 몰고 왔다 몰고 간다. 이제 더위가 시작인데 어떻게 올 여름을 보낼까 걱정이다.
** 여름날에: 도라지꽃이 핀 여름날 반짇고리에 담은 여인의 아름다운 꿈을 그려보았다.
어느 손에 쥐어져 시원한 바람을 티끌세상 밖으로 내보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