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그림이 있는 에세이 168

뉴도미닉 2011. 8. 8. 10:30

 

    2011-07-31

   그림이 있는 에세이168 

 

 

  

  명제: 비상(飛翔) 2002년 작 3F 보드지에 유채

   그림/글: 작가 정란숙

 

 

 

  무섭게 쏟아지던 비가 그치자 매~ㅁ!! 하고 높은 고음이 점점 사위어 가는 어둠 속에서 들린다.

  12층 아파트에서 듣는 매미 소리가 머언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오랜만에 듣는 소리가 반가워 베란다로 나가 밖을 내다봤다.

  나트륨등 붉은 불빛에 놀이터 느티나무와 벚나무의 잎 들은 빗방울을 달고 있어 반짝거리며 서 있고,

  불빛에 보이는 저 아랫동네 풍경은 실루엣처럼 보이기도 해 아름답다. 비가 멈추니 세상이 평온해지는 것 같다. (그만 와야지!!)

  거실로 들어오려다 방충망에 붙어 있는 매미를 보았다. 불빛을 쫓아 이렇게 높은 곳까지 날아와 방충망에 발이 끼어 꼼짝을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니 많은 상념이 머릿속을 오간다.

 

  올해는 7월이 다 가도록 매미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이 밤중에 울어대는 매미의 울음이 무섭게 쏟아지는 폭우에도 ‘나 살아 있었음’

  하고 외치는 것 같아 조금은 반가웠다. 몇 해 전에는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매미울음에 잠도 설치고 푹푹 찌는 한낮의 

  더위에 지쳐 모든 게 귀찮을 때 귀를 뚫을 듯 일제히 울어대는 높은 울음소리에 마냥 짜증스럽기만 했는데.....

  올해는 날마다 몰아치며 내리는 비에 모두 떠내려갔는지 듣기가 어렵다.

 

  속이 다 비치는 날개를 퍼덕이며 이 나무 저 나무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다 어느 순간 나무 등걸에 매달려 자신의 배우자를

  맹렬히 찾는 소리를 내는 매미의 한살이를 안다면 짜증 난다 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고작 2주일 정도를 살기 위해

  캄캄한 땅속에서 7년을 애벌레로 살다가 우화(羽化)하여 나무에 오른다는 것을 안다면,

  그 변화하고자 하는 갈망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세월을 인내로 기다렸다는 것을 안다면

  호들갑스럽게 들리는 매미의 소리를 들어줘야 할 것 같다.

 

  지금은 보기가 힘들지만 예전의 선비들이나 화가들은 문인화 나 화조화 소재로 매미를 자기 화폭에 담기를 좋아 했다고 한다.

  왜냐면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위해 자기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자기 정화를 꾸준히 해야 하는 선비의 각오와 닮았다는

  뜻에서 자신의 청렴과 높은 지향(志向)을 표현하기위해서 라고 한다. 겸재 정선은 외줄기 소나무에 앉은 매미를 그렸고

  현재 심사정은 바위와 꽃나무를 그린 가운데 매미를 그렸다.

  그리고 많은 선비들이 고목 줄기에, 나무에 앉았거나 날아가는 매미를 그렸다.

 

  매~앰 맴! 메~~애~ㅁ 하며 우는 매미는 숲의 정기를 마시며 수액을 먹고, 메뚜기나 나비 애벌레처럼 다른 곡식이나 채소를

  탐하지 않으며, 사는 곳을 정하지 않고, 철에 맞춰 찾아와 짧은 생애를 살다 가며, 투명한 날개를 달아 자기가 가진 것이나 지식을

  훤히 드러나게 한다 하여 예전 벼슬아치들의 모자에 매미의 날개 형상을 붙였다고 한다. 펼친 날개 모양이 문무백관의 오사모이고,

  날아가는 날개 모양이 임금님의 익선관이라고........ 누구한테도 굴하지 않고 목청껏 소리를 뽑아내기도 하고.......

 

  그러고 보면 예전의 우리 선조는 지금과는 달리 모든 생물과 미물들, 그리고 풍경을 바라보며 자신의 세계를 심화시켜 가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여유가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삶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모든 일에 자신의 느낌을, 자신의 생각과 그것을

  바라보며 느꼈던 자신의 성찰(省察)을 그림으로 글로 표현해내는 풍류를 알았던 것 같다.

  그러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지기’를 만나면 그 지기를 만나러 봇짐을 메고 땅끝에서, 하늘 끝까지, 나라 밖으로 찾아 떠나는

  삶의 <행복>을 알았던 것 같다. 이 여름! 나는 갈 곳이 있는가?

 

  삶의 조건은 선택할 수 없지만 그 조건을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매미도 인고의 세월을 거치며 태어나 한철 사람들의 마음에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더운 날 시골 원두막에서 들으면

  시원스레 뽑아대는 울음소리에 가슴 속도 뻥 ! 뚫리게도 하지만 어린이들 방학숙제에 이용되는 곤충채집용에 잡혀서

  가느다란 바늘 침에 등이 찔리는 수난을 당하면서도 우리 삶 가까이에서 우리에게 많은 얘깃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만은 틀림없다.

  내가 이렇게 주절주절 쓴 것만 봐도........나도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해서 어떤 조건이 나를 힘들게 해도 잘 살아 볼 일이다.

 

  비가 또 내린다. 사정없이 빗줄기가 밖을 내다보고 있는 내 얼굴에 부딪친다.

  방충망에 붙어 있던 매미도 사나운 빗줄기에 저절로 떨어져 날아간다.

  이 빗속에 어디에서 젖은 날개를 펴고 말리려는지.......... 창문을 닫았다.

 

 

  **비상[飛翔]: 조그만 바구니에 매미가 앉은 모습을 그렸다.

                      노리개와 골무에는 나비가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렸다.

                      매미나 나비는 애벌레에서 우화하며 또 다른 모습으로 깨어난다.

                      꿈을 꾸는 모습이 아닌 ‘비상’하는 몸짓을 하는.........

 

                      문화관광부 소속으로 창동스튜디오에서 1기 작가로 뽑혀 창작생활을 할 때 (재) 한국문학진흥재단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청소년에게 사랑의 마음 보내기 일환으로 시와 카드로 제작되었던 것이다. 그림을 그려 기증하면

                      그림을 보고 시인들이 씨를 써서 발표하고 작품을 판 수익금으로 청소년에게 희망의 카드를 보냈다.

                      @@ 그래서 바구니에 매미를 그렸다 움츠러들려는 마음을 활짝 펴고 날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리고 기나긴 세월을 참고 기다리며 자신을 계발[啓發]하라는 뜻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