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제: 노랑장미 1993년 작 6F Oil on canvas
모처럼 매봉산에 걷기 하러 묵주를 들고 가는 길가 화단에 외롭게 서 있는 분홍장미를 보았다.
기울어져 가는 석양에 빛이 바래고 꽃 몽우리조차 제대로 달지 못하고 겨우 지탱하고 있는 모
습을 언뜻 봤을 뿐이지만 잔상에 오래 남았다. 화려함의 대명사처럼 느껴지는 장미가 초라하게
있는 모습이 오늘 친구 아들 결혼식장에서 본 싱싱하고 화려하며 순백한 장미꽃들과 비교가 되
어서일까? 모든 꽃들은 꽃밭에서 아름답게 피어날 때 그 꽃으로서의 존재감이 살아나고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사시사철 생명의 기쁨을 느끼게하는 것이라 생각을 했다.
산은 서서히 가을 채비를 하는 듯 길섶에 나뒹구는 낙엽도 많아졌고 하늘도 저번에 봤을 때 보
다 많이 열렸다. 초록의 숲들이 지쳐서 서서히 물들어가는 산을 걷는 기쁨은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까치의 날개짓도 보면서 풀냄새와 더불어 산마루를 넘어오는 산들바람에 실려
오는 산의 향기를 맡으며, 저물어 가는 노을빛에 곱게 물들어가는 숲의 모습과 산의 숨소리를
들으려 조용히 귀를 열어놓고 한걸음 또 한 걸음을 옮기는데 있다. 산은 언제나 이곳에 있으며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여 그때그때 옷을 갈아입으며 나에게 오라고 손짓한다. 너 자신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느끼며 살아라!’하는 것 같다.
한 점 구름도 없는 파란 하늘에 가지를 뻗고 서 있는 상수리 나무들도 빨간 열매를 달고 있는
산수유도 구부정하게 서 있지만 못생긴 모과를 달고 있는 모과나무며 노랑 열매를 달고 있는 은행
나무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당당하게 생명을 노래하고 있는지,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는지 튼튼
하게 뻗어 있는 가지와 주렁주렁 달고 있는 열매로 보여준다. 그런데 나는 어떤가? 내가 어디로
가고 있으며 잘 살아가고 있는가? 뒤돌아봐야 할 것만 같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을
살아가는 나이지만 오늘 내가 걸은 이 길은 내 생애에 있어 단 한 번의 시간이며 화단에 피어있던
장미도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걸었다. 숨 쉬며 살아가는 이 시간은
내 생애에 단 한 번 뿐인 삶인데 똑같은 일상은 아닐지라도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될 것 같다.
한동안 생각 없이 살았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계획되었던 초대전도 취소를 했다.
자꾸 말을 바꿔가는 갤러리 측의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신뢰를 주지 못하는 갤러리와
전시를 한들 내 맘이 편하지도 않을뿐더러 스폰서도 구하지 못한 체 전시를 하다 상처만 더 깊게
만들고 더 가난해 질까 싶어 전시를 안 한다 해놓고 그리던 작업도 중단한 체... 왜 이렇게 삶이
고단할까? 왜 갈수록 벅차고 힘이드는가? 생각을 하며 지냈다. 나 자신이 장작이 되어 훨훨 타오는
시간에서 한 줌 재로 남는 삶을 살아내지 못하고 엉거주춤 하며 내게 오는 시간을 혼자 탄식하며
슬퍼하면서 보내었다.
나의 아픔이 세상의 수많은 아픔의 일부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나의 기쁨이 누군가에게 위
로와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추스르며 다시 그림을 그리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내 머릿속으로 하는 능력이 아니라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망으로 살아
왔다는 것을 나는 얼마 살아오지 않은 내 생애에서 확인하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초점을 맞
추고 살려고 노력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느냐는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개의치 않고 나 자신의
생각에 따라 가치 있게 살아내는 것일 것이다.
비우며 살자고 했던 내 마음이 어느 순간 미련과 욕심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넓어지고 커져버려
뭔가를 원하고 갈망하고 있었다. 적당한 선에서 멈출 줄 모르고 버릴 줄 모르다보니 나 스스로
에게 상처를 주고 혼자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살다보면 인생의 길에서 누구나 외롭게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짝꿍이 있어도 함께 걸어가고자 하는 이가 있어도 막상 길을 나서면 혼자
서 제 그림자를 만들며 걸어가고 내면의 울림을 친구삼아 모든 것을 해결하고 살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요즘 나는 더욱 실감하고 지낸다. 산다는 것은 내 삶이 다할 때 까지 멈추지 않고 생각하며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산길을 천천히 혼자서 음미하며 걷다 보면 숲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넘쳐나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고 비가 오는 날 산마루에 걸려 있는 운해를 바라보며 걸으면 무릉도원을 거니는 듯 알 수 없는
신비함으로 내 마음을 이끌고,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잔잔한 설렘을 갖는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산의 모습을 보며 내 안에 겸손을 들여놓아야 하며 받아들임을 배워야 한다.
생각 없이 그날그날을 살아오면서 못 챙긴 마음들이 비쭉비쭉 들고 나온다. 마음 놓치고 살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나이라고 나에게 말을 한다. 한걸음씩 걸어갈 때 그 움직인 만큼 조금씩 깨달아 부끄
럽지 않게 살아라! 얘기한다.
** 노랑장미: 열심히 작업하며 묶여있는 것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칠 때 의 작품이다.
노랑 장미에 나의 희망을 담아 그렸었다.
참 정직하게 그렸다. 지금 보니.......
2009-09-20
그림이 있는 에세이137
위 그림과 글은 女流畵家 丁蘭淑이 119편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중단하였던 <그림이 있는 에세이>를
올해 봄 다시 쓰기시작 知人들에게 틈틈이 보내고 있다. 120편 부터 여러 벗님과 함께 보고 읽을 기회를
각고져 블로그에 올린다. 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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