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17
그림이 있는 에세이 172
명제: 외로움 1994년 작 10F Oil on canvas
그림/글: 작가 정란숙
한 십 오륙 평 정도의 직사각형 공간에 무대는 고작 서너 평, 그리고 계단으로 이어진 관객석, 보조의자를 통로에 놓아
가득 채워봤자 100명이 겨우 들어갈까 말까 하는 자그마한 소극장에서 배우와 관객이 혼연일체가 되어 2시간 가까이
극 중 배우로 연출가로 관객으로 각각의 역할에 몰입할 수 있는 까닭은 공연을 통해서 느끼는 ‘감동’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이고자 함이고, 또한 그 공연을 통해서 내가 느끼지 못한 그 어떤 것을 ‘해소’하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데, 앞장서 가는 한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열리고
바라보느냐 에 수많은 사람의 마음에 따뜻한 훈풍의 바람이 불게 하고, 얼음같이 차게 하고, 복수의 칼날을 갈게 하고
암흑의 구렁텅이에서 살게 하는 것을 우리는 살면서 많이 보고 느낀다. 그러한 삶이나 요소들을 짧은 시간 안에
기승전결로 다양한 실험적인 요소들로 집약해 만들어내는 것을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하는 또 다른 동작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움직이며, 얼굴의 표정과 살이 떨리는 움직임을 가까이에서 보며 땀방울이 조명에 비쳐
반짝이며 빛날 적에 느껴지는 전율에 희열을 느끼며 배우와 일치감을 맛보며 나는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느끼게 하고, 카타르시스를 갖게 하는 것이 소극장이 갖는 매력이라 나는 생각한다.
대학로의 조그만 소극장에서 <햄릿 업데이트>를 6개의 극단(청우, 골목길, 백수광부, 여행자, 작은신화, 풍경)이
2주일씩 2팀으로 나뉘어 자기만의 연출과 각색으로 풀어내어 관객들과 소통한다기에 기대를 하고 시간이 걸려도
기다렸다가 6개 극단의 연극을 다 봤다. 어렸을 때 동화로 읽었던 셰익스피어 원작의 햄릿, 소녀 시절에 소설로 읽어봤고,
영화로도, 뮤지컬로 대극장에서 하는 연극으로 하는 햄릿을 예전에 봤는데 업데이트가 된 오늘의 ‘햄릿’을 소극장에서
어떤 감각으로 표출했나? 궁금했었다. 첫 번째 로 하는 극단 (청우)에 딸이 극중 <오필리어 >역으로 나와 어떤
모습으로 연기를 할까? 하는 엄마로서 갖는 노파심도 있었다.
“단 한 자루의 칼이면 당장에라도 숨통을 끊어버릴 수 있는데도 나는 죽음이라는 미지의 나라에 대한 두려움으로 결심을
못하고 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 “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니라” “그리고 남는 건 침묵뿐이다“ 등 귀에
익숙한 대사들이 나와 ‘햄릿’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뿐 ‘햄릿’은 온 데 간데 가 없었다. 그 옛날 지고지순했던 ‘오필리아’도
없었고, 우유부단하고 사색적인 ‘햄릿’도 없고, 그 외 등장하는 인물들도 그러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햄릿’이고
‘오필리어’이며 욕망에 가득찬 ‘거트루드’이며 ‘클로디어스’이다. 첫째 팀이었던 (청우,백수광부, 여행자)가 조금은 햄릿의
원형을 보여주려 노력하면서 굿판을 만들었다면 둘째팀( 골목길, 풍경, 작은신화)은 오늘의 거리에서 바라보는 많은
'햄릿'에 중점을 두며 전개를 했는데 첫째 팀은 그래도 생각할 여지를 남겨줬다면 둘째 팀은 조금은 황당했다.
연극에는 우리가 붙들고 봐야 할 줄기가 있어야 한다. 관객들로 하여금 뭔가 시선을 끌어당기는 요소가 있어야 하고,
연출자가 해석하여 이끌어내는 요소인 화두(話頭)나 바라봐야 하는 곳을 분명하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연극을 보는 나이기에 각 극단의 성격을 잘 모르고 연출자의 특성을 모르지만 조금은 난해하고 이해가
안 간 부분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몇몇 극단의 연극을 봤던 나는 그들만의 언어로 ‘햄릿’을 풀어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그림 그리는 선생들이 각자의 기법으로 똑같은 사물을 자기들의 화법으로 자기만의
그림으로 표현해 내듯 각자의 시선과 감각으로 재구성하여 전혀 다른 ‘햄릿’을 보여주었다.
간단한 소도구 몇 개, 요란하지 않은 조명 몇 개 와 많지 않은 등장인물들의 조합이 만들어낸 연극이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의
하나이고 대표작이랄 수 있는 ‘햄릿’을 스펙터클한 무대가 아닌 곳에서도 올려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 우리는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죽음이라는 끈을 용기 있게 풀고 나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고, 어떤 생각으로 연출했던 바라보고
느끼는 것은 관객인 나의 몫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날마다 전회 매진이라는 이야기를 딸에게 듣고, 또 무대를 바라보며
느끼는 것은 25,000원이라는 적지만은 입장료를 내고 삼삼오오 찾아와 함께 소통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보는 것 같은 즐거움이 있었다. 물론 할인 티켓도 있겠지만 많지 않은 젊은이들이 의식 있는 연극무대를 찾아와 자리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함께 웃고 의미를 부여하며 소통하는 것에 바라보는 기쁨이 있었다면 너무 비약적일까?
** 외로움: 누군가에게 주려고 예쁜 끈으로 묶어놓은 바구니에 장미 한 송이 걸쳐 있다. 무엇이든 하나는 외롭다.
한 송이 장미도, 한 사람도........
바구니 텅 빈 공간에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외로움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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