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그림이 있는 에세이 170

뉴도미닉 2011. 9. 5. 13:46

 

 

 

     2011-08-20

     그림이 있는 에세이 170        

 

 

            

    명제: 가을이 오면 2010년 작 10F Oil on canvas

       그림/글 : 작가  정 란 숙

 

 

    비가 멈춘 뒤의 산속은 꽤나 분주하다. 계곡은 나무뿌리에 물을 잔뜩 머금었다 “콸~ 콸”토해내는 물소리로 요란하고,

    숨죽이며 있던 곤충과 풀벌레들은 때를 만난 듯 제 목소리를 내느라 시끄럽다. 길섶의 작은 들꽃들은 한 줌 불어오는

    바람에 수정구슬을 털어내기에 바쁘고, 나뭇잎들은 비에 씻겨 더욱 푸르고 싱싱하다.

    비 온 뒤의 숲의 냄새는 비릿하면서도 나무들이 뿜어내는 상큼한 향으로 내 작은 가슴을 채워주기에 충분하다.

    코를 벌름거리며 심호흡을 크게 하며 걷는다. 

 

    오늘은 109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려서 우이령 길 입구를 지나 육모정 고개로 올라가서 영봉을 오르고 도선사로

    내려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40여 분을 헉!헉! 거리고 육모정 고개에 이르니 영봉은 까마득하게 보이고, 옆으로 조그만

    오솔길이 보여 무작정 그 길로 방향을 잡았다. 산에 다녀 본 경험으로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될 것이라는 생각에

    터벅터벅 걸으며 북한산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마음으로, 코에 담는다. 비가 멈춘 뒤의 숲은 소나무와 각양각색의

    나무들과 이름 모를 풀들이 뿜어내는 냄새로 상큼하다. 머리까지 맑고 향기롭게 젖어들게 한다.

    내 발자국 소리만 사각사각 나는 인적이 없는 작은 오솔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간간이 지난번의 폭우에 찢겨진 나뭇가지들이 처참한 모습으로 길섶에 내 뒹굴고 있고 찢어진 나무줄기에선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식물은 상처를 받을 때마다 향기를 낸다. 잔디를 깎을 때 나는 풀 냄새는 초록내음 을 가득 내뿜어

    자기 존재를 과시하고, 껍질이 벗겨지고 부러진 소나무에선 호박 빛 송진이 구슬처럼 흘러내려 자기 상처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다. 사람 또한 상처를 받고 그것을 끌어안고 극복 한 사람이 진솔한 모습을 보이고 어딘지 모르게 향기가

    그 사람에게서 나오듯이 소나무 냄새의 짙은 향기는 송진이 뿜어내는 양에 따를까? 어렸을 적 소나무 껍질을 벗겨내고

    그 속의 하얀 속살을 벗겨 먹으면 소나무 특유의 냄새와 쌉싸름하며 떫은맛이었다가 계속 씹고 있으면 달짝지근한

    맛이 뭐라 표현하기 어렵지만 맛이 있었고 배고픔도 달래주었다는 생각이다. 오늘 따라 숲의 내음은 더욱 진하고

    길섶에 핀 보랏빛 꽃은 햇빛아래 눈이 부시다.

  

    사상가 <루쉰> 은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춰질까 봐 계곡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을 마냥 걸었다. 그러다 운동장처럼 널려 있는 바위와

    평상 같이 넒은 바위들을 옥같이 맑은 물들이 휘감고 흐르고 소나무 한그루 하얀 물살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 곳을

    지나칠 수 없어 배낭을 내려놓고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씻었다. 너무나 시원하고 좋아 등산화를 벗고 양말을 벗어

    따뜻한 바위에 널어놓고 탁족을 했다.

  

    계곡에 물이 가득하니 하늘의 구름 그림자도 가득 담을 수 있고 바람에 일렁이는 여울도 느낄 수 있다. 커다란 바위를

    휘감아 가는 모양도 넉넉하고 물살이 떨어져 작은 폭포를 만들어 초록빛 웅덩이를 만들어 내는 모습도 풍성하다.

    신록이 우거진 머리 위로 멀리 인수봉이 보이고 파란 하늘 아래 아무도 없는 이곳에 앉아 시간을 죽이는 내 모습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 속의 주인공인 양 느껴졌다. 조선시대 화가들의 ’화첩‘ 속의 주인공이 되어 가져온 수박과 김밥을 먹으며

    신윤복도 김홍도, 겸재 정선도 이런 곳에서 화첩을 꺼내 들고 흐르는 물에 붓을 담가 가며 그림을 그렸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깨끗한 모래알들이 가만가만 물장구를 치는 발가락 사이로 드나든다. 발 맛사지를 받고 지압을 한 것

    처럼 피곤함이 가셨다.

  

    자연은 아무리 사랑하고 좋아 해주는 상대를 만난다 해도 자신의 고유한 특성이나 본연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이것이 자연이 진정 아름다운 이유가 아닐까? 한참을 놀다 설악산 오대산 계곡도 부럽지 않을 계곡이

    북한산에 숨어 있는데 이렇게 사람이 없을까? 이상하게 생각하며 걷는데 군사지역 출입금지라는 현수막이 보였다.

    멧돼지 출몰하는 구역이라고 대처하는 법을 써놓은 팻말도 보인다. 마음이 초조해졌다. 길을 잘못 들어 출입금지

    구역에서 혼자 유유자적하며 놀면서 내려왔다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길은 점점 넓어지고 그림 같은 계곡은 혼자

    보기에 아깝다는 생각을 하며 내려오는데 세상에!! 군대 연병장으로 길이 나있었다. 00부대 휴양소라는 팻말도 있고....

    크! 크!~~ 초소 초병이 철조망으로 만들어진 문의 열쇠를 풀고 열어준다.

  

    한참을 걸어 나와 도대체 이곳이 어딘가 위치를 확인해 보았는데 사기막골 입구로 가는 길이었다.

    둘레길 12구간인 교현 우이령길을 걷고 솔 고개를 지나 오봉 탐방지원센터로 나오니 송추 유원지다.

    닭백숙냄새, 고기 굽는 냄새, 물놀이 하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 길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자동차의 소리!

    소리로 가득 찬 사람 사는 세상으로 들어왔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산을 넘어왔다. 넘어온 길이 무려 13키로 미터!!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길이 나있었을까~~~~

 

 

   **가을이 오면: 보랏빛 벌개미취 들이 길섶에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가을이 오고 있다는 신호다.

                     싱그럽고 가을 향이 물씬나는 모과도 그렸다.

                     이제 성숙의 계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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