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님 기일
지난 55년 동안 2월 날씨로는 가장 추웠던 2월 2일[음력 1월 11일]은 할머니 기일이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두 분 다 조선 26대 왕 고종황제 재위기간 중 출생하셨고 또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는 1879년에 출생하시고 1895년에 그리고 할머니는 1876년에 출생하시고 1898년에
돌아가시니 할아버지는 17세 그리고 할머니는 22세라는 짧은 삶만을 영위하신 겁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구전에 의하면 가난과 추위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종손이셨던
할아버지는 자식을 두지 못하셨고 돌아가신지 9년 후에 2남으로 출생하신 조카가 되는 저의 아버지가
후일 집안 어른들의 결정으로 양자[계자]로 들어가게 되셨고 제가 종손이 되었습니다.
31일에 내린 눈으로 봉안묘는 흰눈으로 덮여 그대로 쌓여 있었지요. 장갑 낀 손으로 눈을 치우며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세 살 아래인 어린 신랑과 천생인연을 맺고 고생하시며 사셨던 할머니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영정 사진도 그 외 아무런 인적 사항도 알 수는 없는 손자로서 착잡할 뿐이었습니다.
한창 꽃다운 젊은 시절을 제대로 꽃을 펴보지도 못하시고 그렇게 허무하게 일찍 떠나셨으니·····.
아마도 이 세상엔 운명이라는 게 있나 봅니다. 저도 2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당연히 종손이 될 수는
없었지요. 저에겐 형님이 계셨으니까요. 일제 시 충북 시골에서 서울로 유학 중이었던 형은 어린 나이에
수영 중 사고로 돌아가셔서 제가 장남이 된 것입니다. 아버지가 생존 시에 하셨다는 말씀이 회상되는군요.
"그 애는 이름을 잘못 지어 일찍 죽었어 ···." 라고요. 아버지가 형은 항렬자인 남[南]자 다음에 호[虎] 자로,
저는 주[柱] 자로 이름을 지었는데 제 이름이 우리 항렬 중 기둥이 되는 柱 자를 썼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지요. 어머니가 생전에 저에게 전해주신 말씀입니다.
메모리얼 파크의 기온은 영하 10도를 밑도는데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은 파랗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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