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2
그림이 있는 에세이185
그림/글: 작가 정란숙 명제: 배꽃 필 무렵 2010년 작 8F Oil on canvas
모처럼 한가한 토요일 오후다. 새벽에 갑자기 깨어서는 쉽게 잠이 들지를 못했다. 며칠 있으면 이사할 생각에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녀서 자는 것을 포기하고 이사할 때 필요한 것들을 수첩에 메모하며 부족한 비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
걱정을 하면서 다시 잠을 청했지만 정신은 더욱 말똥말똥 거려 침대에서 일어나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고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돌아왔다. 마침 경비 아저씨가 주차장에 물청소를 하고 계셔서 세차를 했다. 거미줄처럼 빽빽하게 처져 있던
머릿속이 깨끗해진 차처럼 개운해졌다. 올라와 간단하게 엷은 커피와 빵 한 조각으로 요기를 하고 책을 읽다 깜박 잠이 들었다
깨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렇게 한가한 적이 언제였던가 싶다.
한동안 전시회를 준비하고 전시회를 하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다쳐서 아무것도 못 하고 지냈다. 몸도 피곤하고 구겨진 자존심
때문에 마음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 글을 써보려고 했지만 뒤죽박죽된 머릿속에 단어들이 들어오는
것을 거부했고, 무엇을 읽으려 하거나 들으려고도 하지 않아 책을 들어도 활자가 들어오지 않고, 읽었어도 도대체가 입력이
안 되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서 상처를 받는 이유는 우리의 믿음을 의심으로, 신뢰는 혼란으로, 친밀감은 거부를 받았다는
느낌으로 바뀌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쯤 기대어 살기에 그 기대치에 못 미쳤을 때 느끼는 상실감과
허전함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역시나 하는 마음처럼 상승작용에 비례한다는 생각이다.
내가 그랬다. 조그만 집을 마련하면서 부족한 비용을 마련해보고자 초대된 기획전시회에 최선을 다해보려고 작품을 사줄 만한
사람들을 찾아가기도 하고 마침 열린 동창회에 가서 내 사정을 말하고 이번 기회에 작품을 세일을 할 터이니 소장해달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상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받는다는 말이 실감 나도록 현실은 냉정했다. 내가 한가하게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림을 팔아 생활하는 전업 작가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듯 동창들은 친구들에게
선물하듯 그림을 주라는 말을 하고 기증도 하라고 했다. 겉옷 벗었더니 속옷까지 벗으라고 했다. 자기 것은 아까워 내놓을 줄
모르면서 남의 것은 쉽게 보이는지 생각하는 척 말을 했다. 싸게 준다고 해도 작품을 못사는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듯 보였다는
것이 많이 속상했다. 그리고 아직도 그림은 선물로 받는 것이고 선물로 받을 때 자신의 인격이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늘 자신의 생각 속에 머물고 그 속에서 궁리하며 좋은 방법을 찾으려 머리를 굴리며 애를 쓴다. 그러나 그 생각이
우리의 운명도 되고 굴레도 된다는 것을 나는 이번 전시를 하면서 깨달았다. 모두가 내 맘 같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뭔가의 집착에 매여 있을 때에는 알게 모르게 나와 남에게 피해를 주고 맘에 상처를 준다는 것도 깨달았다. 작품을 팔아 돈을
마련해야 하는 나만의 생각이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상대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고 그로 인하여 내가 아플 수 있다는 것을
돌아보는 날 들이었다.
상대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다르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해보려 하지만 그것을 알게 되는 것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 사실에 느끼는 아픔도 있지만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는 방편이 될 수도 있다. 오늘의 모욕을 기억하지만, 내일
아침에 일어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작할 수 있고 상대와 관계를 이어가려 하는 것, 사람이면 누구나 갖는 숙제가 아닐까
한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내가 더 얼마나 아우르고 사랑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도 안 한 사람들이 멀리서 찾아와 선입견이나 편견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작품과 나를 바라보며
걱정을 해주고 축하도 해주며 작품을 사가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참으로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며 정말 잘살아야 (물질적으로 잘사는 것이 아닌) 한다는 각오를 했다. 내 작품을 바라보는 그들에게 실망시키지 않게 더욱
정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작품 자체로 가치가 있음을 느끼게끔 작업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 배꽃 필 무렵: 배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이면 모란도 피기 시작하고 온갖 화초 들이 제각각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존재감을 나타낸다. 가볍게 살기 위해서는 덜어내는 연습이 필요하고 비워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바구니가 어떤 모양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담았느냐가 중요하다. 바구니에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꽃이 담긴 바늘꽂이와 골무를 담았다. 모두가 염원이 담긴 도구로 쓰이는 것들이다.
자신을 들어내지 않는 존재로서......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림이 있는 에세이187 (0) | 2013.01.09 |
---|---|
그림이 있는 에세이186 (0) | 2012.12.13 |
Andre Rieu - Vienna Live (0) | 2012.08.01 |
KASF 2012 엄기용 개인전 (0) | 2012.06.23 |
그림이 있는 에세이 183 (0) | 2012.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