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그림이 있는 에세이 150

뉴도미닉 2010. 8. 11. 17:08

  

 

   2010-08-10

  그림이 있는 에세이 150

 

  명제: 연잎의 대화 2009년 작 20F Oil on canvas

 

 

초록색 연잎에 빗방울이 뚝뚝 떨어져 연잎에 고이는가 싶으면 뚜르르 굴러 밑으로 떨어지

가느다란 목을 길게 뻗어 무겁게 꽃봉오리를 이고 있는 연꽃만 빗방울이 무거워 이리

저리 꽃잎을 흩트리고 있을 뿐…. 연잎은 팔랑거리며 더욱 선명하게 초록 빛 싱싱함을 뽐

내며 비를 맞고 있다. 이미 꽃잎이 떨어진 연밥은 배추 색 목을 길게 빼어 하늘을 쳐다보

며 온 몸으로 비를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 마냥 애처롭다.

 

 

비가 오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습한 기운이 온몸을 싸고 있어 땀은 줄줄 흐르는데 호수에

널려 피어 있는 연잎들의 싱그러움은 무더위와는 상관없이 생명 그 자체이다. 연꽃을 마음

에 담고자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도 있지만 연꽃을 배경으로 갖가지 포즈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은 알까? 자연은 무언가의 배경이 되는데 주저하지 않

고 넉넉히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준다는것을….  

누군가의 배경이 된다고 해서 자신이 상실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경이 된다는 것은 자신

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감의 확신이 없다면,

배경이 되어 누군가를, 무언가를 빛나게 돋보이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끝없이 펼쳐져 싱그러움을 토해내는 연잎들의 장관(壯觀)을 보노라니 살아있음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생이란 누가 뭐래도 자기 스스로가 추스르며 시작하는 것 일게다. 끊임없이 자신을 정화

하고 일상적인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주변의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

일게다. 자연과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자연을 만나러 가야하고 자연이 보듬어주는 얘기들

을 마음으로 담고 마음으로 느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비오는 여름날 풍광이 내게 말

전해온다. 그 사이로 작은 새들 파닥 거리며 내 마음자리에 날고 잿빛 두루미 긴 날개 펼

치며 멀리 날아간다.

 

 

비가 오는 아침나절에 모처럼 양수리에 나와서 연꽃을 바라보며 많은 상념에 빠졌다. 하늘

이 햇빛과 비를 내리면 대지는 모든 것을 품어 수많은 생명들을 키우는 것임을, 사람의 마

음에 다가가고 어루만지는 것은 말이 아니라 그냥 조용히 옆에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누군가에게 배려하고 도움을 주는 것은 받는 이만 좋은 것이 아니라 뭔가

를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부자인 사람들에게도 좋은 것임을, 관심을 받고 있다고 생각되어

지는 것 또한 살아가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임을….

 

 

며칠 전 남편 의 11주기일이어서 아이들과 가족들과 모처럼 함께하는 따뜻한 시간을 가졌다.

제일 더울 때 제사음식을 준비하고 만들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정적만 감도는 집에 식

구들이 모이니 그동안 소원(疎遠)했던 서먹함이 사라지고 마음으로 다가가는 소통이 가능해

지는 것을 느끼며 제사란 죽은 사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산자들의 위로가 아닐까 하는 생

각을 해보았다. 뜻밖에도 상차림에 필요한 과일과 제주(祭酒)를 보내주신 분, 상차림에 필

요한 것 준비하라며 마음써주신 분, 더운데 힘들게 준비한 음식 맛있게 먹었다며 조금씩 성

의를 보여준 가족들의 배려가 올해는 유난히도 마음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남편의 기일을 기억하여 선물을 준비하고 마음을 써준 배려에 눈이 먼저가고 마음이 전해지

기에 선물에, 건네주는 봉투에 눈이 가는 것이 아니라,사랑 없이 전하는 값비싼 선물 보다

마음이 듬뿍 담긴 선물에 한없는 감사와 기쁨을 느꼈다. 남편이 살아 있을 적에는 받기보다

주기에 급급했었다. 가끔은 정성 없이 의무감에 주기도 했고, 조금은 내가 편하고자 선물이

란 포장으로 전했고, 또 어떨 때는 우월감으로 주기도 했었다. 물론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포장해 전한 적이 더 많았었지만…. 그런데 남편이 가고 나서는 받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게 자존심이 상하고 줄 수 없는 내 처지가 한심스럽고 모든 게 부족하고 아쉬운 것뿐인

내 삶이 싫었다.

 

 

이 세상은 공짜가 없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면서 받은 만큼 돌려주려 애를 썼지만 힘들었다.

그래서 선물에 담긴 마음을 헤아리기 전에 내가 이런 처지가 되어서인가? 하는 자존심 때문

에 혼자 어쩔 줄 몰랐다.그러다 어느 날 생각을 바꿨다. 작고 보잘 것 없음에도 기쁘게 받

아들이고 감사하며 주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니 그동안 의 짓눌렸던 마음이 풀어지고 모든

것이 감사하고 내 안에 온기가 돌았다.내가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고 나를 생각하

고 정성껏 마음을 열어 선물을 사는 모습이 눈에 그려져서 고마운 마음만 가득했다. 비우고

받아들이니 내 삶이 조금은 여유롭다.

 

 

내가 조금은 성숙 되어가고 또 살려고 노력하는 까닭은 내 주변에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

이 계셔서 지켜봐 주시며 내게 손 내밀어 꽉 쥔 손을 펴게 하고 어루만져 주고 받아들이고

나누는 능력을 키워주시기 때문임을 빗물에 씻긴 연잎들의 푸름이 하얀 백련의 자태를 바라

보며 생각해 보았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항상 누군가에게 기대어 태어나고 기대며 성숙

한다. 비가 그친 하늘은 햇살이 눈부시다. 하늘을 찌르듯 날카롭게 들리는 매미소리에 놀라

상념에서 빠져 나왔다.

 

 

 

 ** 연잎의 대화: 조용히 관조하며 서로의 얘기에 여념이 없는 연잎들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위 그림과 글은 女流畵家 丁蘭淑이 119편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중단하였던 <그림이 있는 에세이>

 작년 봄 다시 쓰기 시작하여 知人에게 틈틈이 보내고 있다. 120편부터 여러 벗님과 함께 보고 읽을 

 기회를 갖도록 오늘은 150편을 올린다.  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