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27
그림이 있는 에세이151
명제; 가을 이야기 2009년 작 Oil on canvas
잠시 멈췄던 비가 또 쏟아진다. 앞을 분간할 수 없게 내리는 비에 나뭇잎도 바위도
조그만 풀잎도 고스란히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다.
계곡엔 하얀 거품을 물고 콸콸콸 쏜살같이 내려가는 물소리로 요란하다. 숲은 온통
소리들로 가득하다. 주룩주룩 떨어지는 빗소리도 좋지만 어딘가에 부딪쳐서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도 듣기가 좋다. 어디서 이런 소리들이 숨어 있다 들리는 것인지.....
비가 오지 않은 여름 산은 가끔 울어대는 매미소리와 이름 모를 새들 소리와 내 발자국
소리뿐인데 온 산이 아우성을 치고 있다.
천둥번개가 번갈아 가며 나를 놀라게 한다. 소리의 울림이 전해지지 않는다면 소리는
소리로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소리는 소리로서의 자기 몫을 다할 뿐 자기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기에 어쩌다 듣는 이 소리가 마냥 좋기만 하고 모처럼 깊은 숲속에서 듣는 묘미가
색다르지만 날마다 이런 소음들로 가득 차있는 세상에 산다면 아마도 돌아버리지 않을까?
내가 산에 오르는 것은 자연이 주는 침묵을 내 안에 담기 위함이었다. 내 안의 온갖 번잡한 상념을
하나하나 내려놓고 오기 위함인데 오늘은 산이, 물소리가 나무들이 내게 끝없이 얘기한다.
많은 말이 필요치 않아도 다 보듬어 주던 산이 그동안 표현해내지 못한 얘기를, 마음 속
깊이 자리하고 있던 얘기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그동안 세상사에 찌들려 켜켜이 쌓여있는 많은 소음들을 깨끗이 정화하며 쉬었다 가라고
숲은 내게 끊임없이 얘기한다.
비가 오는 북한산은 너무 아름답다. 운무에 가려져 아스라이 보이는 도봉산의 오봉은
마치 선경(仙境)을 보는 듯하다. 구기동에서만 바라보던 북한산이 이곳 정릉에서 우이동에서
보니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산 지킴이 아저씨가 천둥번개가 너무 잦으니 산을 내려가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 겁이 나있는 참에 내려오다가 4.19 묘역 뒷길로 나 있는 둘레 길을
걸었다.
보는 각도를 달리하니 산이 주는 새로움이 아름다운 비밀의 화원에 들어서 있는 것 같다.
아파트 뒤쪽으로 산책길을 조성해 놓았는데 무궁화며 구절초가 비를 함초롬히 맞으며
피어있는 모습을 보며 걷노라니 마음가득 행복함이 스며들었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마음으로
볼 수 있게 하고 새로움으로 가득하게 하는........
언제나 이렇게 열린 마음으로 살았으면 싶었다.
비가 그친 계곡 바위에 앉아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땀이 젖은 수건을 빨아 얼굴을
닦으며 생각했다. 찬류세상(竄流世上) 물 흐르듯이 눈 깜빡 할 사이에 지나가는 세상에서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탐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
나는 뭣 하러 이 세상에 왔는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기
전에 생각을 바꿔 바라보면 지금 가슴에 느끼는 행복감이나 감사함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여겨졌다. 물살에 휩쓸려가는 작은 모래알, 여린 풀잎, 조그만 송사리 한 마리, 작은 것
그대로 생긴 대로 고마워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내는 것이 내려놓은 만큼 마음에 담아
지는 기쁨이라 느꼈다.
땀과 비로 엉망인 몰골이 심란해 산을 내려와 목욕탕에 갔다. 산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들르는 작은 찜질방이었는데 물도 깨끗하고 사람도 적고 쾌적하여 오랜만의 산행에 지
친 다리를 풀기에 참으로 좋았다. 따뜻한 물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찜질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어떻게 해야 기쁜지는 나에게 물어봐야 한다. 내가 어떻게 바라보고 즐기
느냐의 문제이다. 몇 천원 만 내면 들어와 내 지친 심신을 녹여주는 이곳에 누워 '산'도
자신의 길을 내게 열어주었고 물’도 이렇게 내게 나를 감싸고 포용해주니 나 또한 나 아닌
사람들에게 길이 되어 주고 감싸주는 물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기쁨은 어떤 일이 일어나서가 아니라 일어난 어떤 일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달려있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그 모든 것을 내 안에 받아들이느냐에 기쁨은 온다.
내가 어느 쪽으로 마음을 기울이는가에 기쁨도 슬픔도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는
지금. 회색빛 하늘에 서서히 묻혀가는 산을 바라본다.
버스 종점엔 산을 내려오는 사람 얼큰하게 취해 비틀 거리는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며
서있다. 그것조차 바라보기 편한 풍경이다.
** 가을 이야기: 여름 끝자락이면 숲속, 길섶에 무리지어 피어있는 구절초를
본다. 길가 도로변이나 화단에서 보랏빛으로 흐드러지게 피
어있는 구절초는 늦가을 까지 피고지고 한다.
예년 같으면 가을이 성큼 오는 느낌인 이즈음.........
시큼한 모과를 바구니에 담았다.
위 그림과 글은 女流畵家 丁蘭淑이 119편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중단하였던 <그림이 있는 에세이>를
작년 봄 다시 쓰기 시작하여 知人에게 틈틈이 보내고 있다. 120편부터 여러 벗님과 함께 보고 읽을
기회를 갖도록 오늘은 151편을 올린다. 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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