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정란숙의 그림이 있는 에세이 122

뉴도미닉 2009. 5. 28. 03:36

   

     명제: 수줍음 2009년 작 20 F Oil on canvas


 차창 밖으로 멀리 보이는 산의 나무들이 몽실몽실, 꿈틀꿈틀 거리는 듯 연두 빛으로 곱게

 단장하고 산 벚꽃이 하얗게 흐드러지게 피어난 사이로 진달래 연분홍빛이 온통 산허리를

 붉게 만들고 꽃 대궐로 치장하는  우리네 산과 들판은 봄기운이 완연하다. 아지랑이 아롱

 거리는 들을 지나고 강을 건너가노라면  뭔가 내 손에 잡힐 것 같은 느낌이다.

 아른거리는 꿈을 찾아 어디로 가야하는지 갈 곳을 찾아주고 내 가슴이 가야할 곳을 안내

 해주는 그 뭔가는 없을까? 꿈이란 어딘가를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고 떠나야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이든 어디를 가든 떠남에 의미를 두고 산다면  바라보이는 풍경의

 신비로움에 흠뻑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저기 저렇게 높아 보이는 산과 깊은 계곡에도 봄은 소리 없이 찾아와 새들의 둥지를 따뜻

 하게 해주고 개울의 살얼음을 녹여 물고기들이 유영을 하게하며 꽃을 피우며 모든 생물들이

 기지개를 켜고 자기 길을 걷게 하는 것이다.

 길옆으로 만개해버린 배꽃이며 복사꽃이 하얗게 피어있는 조팝나무와 싸리 꽃 사이로 바람에

 흩날리며 벚꽃은 꽃비를 뿌리기에 여념이 없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우리네 산의 곡선은

 눈물 나게 아름답고 산등성이의 작은 밭떼기와 들판의 고즈넉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풍

 경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정말로 감사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며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연초록물결이 가득한 산허리로 길이 나있는 게 보인다. 원래부터 나있는 길이 아니라 사람이

 다니며, 파헤쳐서 만들어 놓았듯이, 나의 꿈도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 바람과 원함이

 만들어가듯 오솔길, 산길, 저렇게 산허리를 갈라놓은 길도 만들며 이만큼의 세월을 살아왔다.

 아름다운 길을 만들기도 했지만 삭막하고 황량한 벌판과도 같은 길을 내며 나를 죽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꿈을 내 가슴에 담고 꿈을 찾아 만들어 가다보면 나를 살아있게 하는 길이고 가슴으로

 느끼며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나를 구원 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갖기까지 많은 세월이 흘렀다.


 가진 것을 잃어가고 비워내며 살아가는 인생길에서 잊히지 않은 추억이 더러 남아있는 것이 얼마

 나 다행인지.......산비탈에 쑥쑥 올라와있는 달래며 냉이 씀바귀, 그리고 쑥, 노랗게, 하얗게

 피어있는 민들레 꽃무더기를 보면서 어릴 적 달래를 곱게 땋아가지고 달래 각시를 만들고 사금

 파리를 곱게 다듬어 그릇을 만들고, 댓잎으로 숟가락을 만들며 벽돌을 곱게 갈아 고춧가루를

 만들어 풀들을 물들이며 소꿉장난을 하면서 내 소박한 꿈을 키웠던 적도 있었다. 달래각시가

 커서 내가 되었고 이만큼 나이 들어 예쁜 그릇에 정갈한 음식을 담아내는 지금도, 봄은 여전히

 나에설렘으로 수줍고 꿈 많았던 어릴 적 아이로 나에게 다가온다.


 수없이 자라나는 잡풀들과 뾰족뾰족 올라오는 옥잠화의 연두 빛 새싹을 보고, 보랏빛 제비꽃의

 앙증스러움에 감탄을 하며, 노란 밥풀떼기 꽃의 소박한 아름다움에 눈을 팔며, 노란 솜털을 부스

 스하며 털어내며 종종걸음을 치는 병아리들을 보며, 팔랑거리는 나비들의 몸짓을 보면서 자연과

 교감하노라면 순수하고 철없던 어릴 적이 떠오르고 그 꿈을 잃지 않고자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온

 지금, 모든 것을 감사하며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이만큼 있다는 사실이 너무 소중하게 생각되며

 내 안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몫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지금 이순간이 행복하며 살아있기에 끊

 임없이 나를 돌보아야하는 값진 삶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기쁨!!


 영덕 군수님의 초대로 몇몇 그림 그리는 선생님들과 영덕의 수려한 풍경과 바다,그리고 영덕 게를

 시식할 수 있는 기대를 잔뜩 갖고 복사꽃을 사생하러 가고 오는 버스 속에서 우리의 산과 들과

 강이 너무나 아름답고 그 들과 밭을 일구는 사람들의 몸짓을 바라보며 내 영혼의 밭을 일구는

 작은 몸짓을 나는 얼마나 하고 있는지, 끝없이 작은 몸짓으로 일구다 보면 아름다운 복사꽃 과수

 원이, 배꽃이 피는 과수원으로 점점 넓혀 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내 상상으로 펼쳐지는 꽃이

 아니라 저기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고 좀 더 성숙한 나무로 자라려고 무거운 돌을 달고

 무게중심을 잡아가는 가지들의 생명력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기쁨을 갖듯 관념이 아닌 그리

 고 쓰는 작업을 하는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작업을 좀 더 성실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길 이었다. 마음으로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캔버스에 내 꿈을 그려내는 작업 또한 중요 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봄의 소리 없는 아우성........ 



 수줍음 : 봄이면 겨우내 누렇게 떠있던 조그만 가지에서 움이 트고

          수줍게 꽃망울을 터트리는 하얀 영산홍의 순수함을 그려 보았다.

          그대에게 수줍게 다가가는 내 마음을 살짝 열어 보이며.......


                     2009-04-18

                     그림이 있는 에세이

 

위 그림과 글은 畵家 丁蘭淑이 119편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중단하였던 <그림이 있는 에세이>를 올해 봄 다시 쓰기

시작 知人들에게 틈틈이 보내고 있다. 120편 부터 여러 벗님과 함께 보고 읽을 기회를 각고져 블로그에 올린다.  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