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제: 사랑 2003년 작 8F Oil on canvas
비가 추적추적 끊임없이 내린다. 베란다 너머 아기 손바닥만큼 커진 단풍나무와 은행나무 잎 들
위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도로를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에 깔려 차르 차아~~하는 빗소리를
들으며 사과주스를 만들어 자고 있는 아이들에게 한 컵씩 주고 나도 한잔을 들고 창밖의 풍경을
내려다본다. 비안개에 가득 젖어있는 산과 아파트들이 먼 나라에 와있는 듯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영혼에게 머언 곳으로 향하는 희망이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고 아스라이
보여지는 실루엣에 그리움이 실려 오는 것 같다. 참 !아름답다.
"란숙 아! 껍질째 먹는 사과란다 씻어서 그냥 먹어라” 하고 친구가 한 봉지 가득 들고 왔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마음을 써주는 친구가 한없이 고맙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좋다가도 마음을
상하게 할 때도 있지만 언제나 변함없는 친구 효숙의 마음씀씀이는 내 가슴을 훈훈하게 하고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짓게 한다. 자기를 들어내지 않고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 찾아주는 친구!
사과주스 한잔에 내 마음이 상큼하게 되어 순하고 착한 여인이고자 한다.
작업실에 오는 길에 집 뒤로 나있는 북악스카이웨이로 차를 몰았다. 천천히 차를 몰아 주변을 둘러
본다. 삶의 속도도 이렇게 늦추며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목적을 향해 몸살하며 뭔가 잡으려 허우적대며 달려가야만 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앞과 옆을 바라보며
가끔은 백미러로 뒤도 돌아보며 마음을 비우듯 여유를 가져본다는 것 !........
깨끗하게 씻겨져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나뭇잎과 하얀 아카시아 꽃잎들이 꽃비 되어 날리는 도로는
오가는 차도 없고 인적도 없어 운무에 감싸인 북악은 환상 그 자체다. 산 아래로 펼쳐지는 정릉 숲과
구름에 휩싸인 북한산은 계절마다 끊임없이 자기들의 색깔로 변화하며 달라져서 나를 놀라게 한다.
춘하추동 새롭게 옷을 갈아입어 나태해지고 생각의 끈을 느슨하게 하고 사는 나에게 경고하는 것 같다.
산은 언제나 부지런하다.
청와대 앞을 지나 광화문 우체국에 들러 내 수필집 3권을 빠른 등기우편으로 가까운 지인께 보내고
우체국 창 너머로 오가는 차들과 우산을 받쳐 들고 종종 걸음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토요일이라
모든 업무가 중단되고 오직 우편물만 취급 하는 창구에 여직원이 한가롭게 앉아있다. '청마’의
<우체국에서> 시 구절이 떠올랐다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사이로 너에게 향한 엽서를 쓴다는..........
비가 오는 시내를 통과해 국립극장에 차를 세워놓고 셔틀버스를 타고 남산에 올랐다. 오랜만에 올라온
국립극장은 행사에 나온 초, 중고생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공연을 준비 중인 사람들의 분주한 몸짓이
척척하게 내리는 빗속에서 비옷을 입고, 또는 우산을 들고 제각각의 몸짓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 더 할
수없이 평화롭게 보인다. 해오름 공연장에서는 북소리와 장구 소리가 요란하다.
산자락에 곧게 뻗은 소나무들이 비구름을 잔뜩 머금고, 불이 꺼진 봉수대는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고
서있지만 그것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사진을 찍는 외국인들의 셔터소리와 낯 설은 단어들이 귓가에 맴돌
고 촉촉하게 젖어있는 타워광장에 우산을 받쳐 들고 걷는 젊은 연인들의 속삭임이 마냥 부럽게만 보이는
남산은 비구름에 잔뜩 쌓여 바로 앞 만 볼 수 있을 뿐 언제나 보이던 한강도 야경에 빛나던 다리들도 보
이지 않고 철책난간에 수없이 매달려 사랑을 고백한 자물쇠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작품처럼 쳐다보며
사랑의 언약을 한 메시지를 살짝살짝 읽어보는 기쁨을 가졌다.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 뭐냐고 묻는다면 아무리 말해도 부족하고, 또 수 만 번을 들어도
고프게 느껴지는 ‘사랑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버리기도 하고, 사랑한다는 말에 누군
가를 살리기도 하는 ‘사랑’은 삶의 시작이기도 하고 마침이기도 하다. 사랑은 서로의 관심에서 시작
되고 그를 아는 것에서 성숙되어진다. 그를 알아가고 그를 이해하며 자연스럽게 자신과 일치가 되게 하는
것, 그리고 하나 되기까지 사랑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관심과 배려 속에서 가꿔가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
께서도 우리를 사랑 하셔서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 이 어디
그리 쉬운가?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러 형태의 사랑이 있겠지만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인생길에 영향을 주고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면 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랑하고 싶은 마음, 사랑하면서도 부족한 마음이 드는 것, 가만히 바라만
봐도 기쁨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이 사랑이 주는 행복이 아닐까?
수 만 가지 형태의 자물쇠들이 각각의 사연을 담고 그 사연이 적혀 있는 채로 비를 흠뻑 맞고 있는 모습
그자체가 작품으로 보여 한참을 들여다보며 누군지도 모르지만 남산에 올라와 사랑의 맹세를 하고 자물
쇠를 채우며 자신들의 내면의 두려움과 허기진 고픔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며 행복해 했을 모습을 그려봤다.
산을 내려와 차를 타고 잠시 한눈을 팔다가 동호대교로 나오는 길을 지나쳐 비가 오는 토요일 오후의 분주
함에 휩쓸려 도로에서 시간을 보내며 일상으로 돌아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먼 나라에 다녀온 듯 아련하다.
사랑 : 바구니 안에 빨간 사과 5개 가족들의 사랑을 담았다.
연두 빛 보자기는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과나무의 초록빛 희망이다.
하얀 무명천은 내 마음의 평화를 나타내고 바탕색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대지(흙)를 표현했다. 상큼한 사과 과육과 향 을 그대에게 전하며.
2009-05-16
그림이 있는 에세이 123
위 그림과 글은 畵家 丁蘭淑이 119편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중단하였던 <그림이 있는 에세이>를 올해 봄 다시 쓰기
시작 知人들에게 틈틈이 보내고 있다. 120편 부터 여러 벗님과 함께 보고 읽을 기회를 각고져 블로그에 올린다. 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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