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제: 죽순의 꿈 2009년 작 20F Oil on canvas
비가 간간히 내려서 물을 머금고 있는 대지들이 촉촉이 젖어 있는 나른한 오후다.
하늘이 뜨거운 햇빛과 비를 내리고 그 햇빛과 빗물을 대지는 받아들여 수없이 많은
생명을 키운다. 가는 봄을 아쉬워하듯 종일 꾸물꾸물 하며 비가 내리는데 초록
잎에 떨어지는 비는 초록 비 인 것처럼 깨끗하게 보인다.
손에 빗물을 받아보면 매연과 먼지가 섞인 시커먼 색일지라도 내 마음에 느껴지는
색은 초록! 그 자체 싱그러움이다.
작업실 창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회색 건물들이어서 삭막해 보이지만 건너보이는
빌라의 뒤뜰에 올망졸망 키 재기를 하고 서있는 감나무, 목련, 진달래, 산수유, 벚
나무들이 계절이 오고가는 것을 느끼게 한다. 잎사귀 들이 비를 맞아 싱싱하게 빛난
다. 비에 젖은 작은 새 한 마리 날개 짓을 하며 감나무 잎 속으로 숨어드는 것을 보
았다. 싱싱한 초록빛으로 뽐내고 서있는 나무들과 작은 새의 움직임을 보노라니 무
심한 듯 흘려보냈던 많은 얘기들과 분주하게 사느라고 가끔은 잊고 지냈던 사람들과
의 기억들이 스멀스멀 일어서는 것 같다. 버릴 것 버리고 비울 것 비운다고 마음마
저 놓아버리니 뭔가 커다란 것을 잃어버린 듯하다.
오늘처럼 하늘이 잔뜩 흐려 있던 봄날! 친구랑 점심을 먹고 의기투합하여 민속촌에
갔었다. 봄 소풍을 온 중고등학생들로 안마당은 소란스러웠지만 뗏목이 놓여있는 호
수 옆의 정자에서 바라보는 마을의 풍경은 엷은 안개비에 젖어 몽환적으로 보이고
고요했다. 산책로를 지나‘금련사’로 가는 길은 우리가 민속촌으로 들어 왔던가?
싶게 딴 나라에 들어온 것처럼 고즈넉하여 좋았다.
아름 들이 소나무가 쭈~욱 뻗어 곧추세워져있는 사이로 살랑거리는 봄바람은 내 마음
을 부풀려 풍선이 되게 하고,연못 속의 잉어들의 한가로운 유영은 여유롭고 정겨웠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들어가 본 많은 가옥들엔 세월만큼이나 우리네 삶 속 깊은 곳을
보는 듯 정답다. 금방이라도 곰방대를 문 촌로의 모습이 저 사립문 사이로 나오는 듯
하고 댕기머리 규수가 다소곳한 모습으로 수틀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을 것 같은 별당
마루에는 먼지만 켜켜이 앉아 있었다.
민속촌에 가면 언제나 가보는 담양의 농가엔 비가오고 너무 늦은 탓인지 바구니를 절고
있지 않지만 몇 개의 올망졸망 작은 바구니를 진열해 놓고 사라고 하는 장인(匠人)을
보았다. 그 장인의 손짓이 어쩐지 낯설게만 느껴지고 서러움이 묻어나는 듯하다. 멀리
담양에 갈 수 없을 적에 내려와 대나무 시렁에 놓인 댓가지들과 댓살들을 사진 찍어와
작품으로 만들기도 하고 뒤 안에 버려놓은 댓살들의 타래더미를 스케치하며 찍어와 작품
으로 만들었는데 방금 잘라다 놓은 듯 대나무 들이 쌓여있고 소재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
다. 실망스런 마음으로 나오는데 조그맣게 심어놓은 대 밭에 시누 대 들이 바람에 흔들
리고 있고 그 사이로 죽순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어버이날 광주 아버지 집에 갔다가 담양에 들러 죽순을 보려 했었지만 너무 일러 보지
못하고 아는 교수님이 손수 짓고 계시는 전원주택에 들러 잘생긴 소나무 몇 그루만 쳐다
보고 왔는데 키 작은 죽순들이 몇 개 삐죽 나와 있었다.
여린 순이 솟아오를 때, 생명들이 삐죽삐죽 솟아 존재를 드러낼 때 가슴 속에는 뜨거운
것이 올라오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땅 속 깊은 곳에서 우주를 품고 있는 씨앗들의
함성을 듣는 것 같아 기쁨으로 가득하다.
자연은 때를 놓치는 법이 없는데 내 마음은 왜 이렇게 춤을 추듯 제 맘대로 인지......
봄을 맞아 신춘기획으로 울산 현대 예술관에서 송죽예찬(松竹禮讚) 기획전시회에 초대되
어 죽순을 바구니와 그리고 싶어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가지고 있던 사진
한 장으로 겨우 작품을 만들면서 올 봄에는 꼭 죽순을 사진으로 담아보려 했었다. 그러나
시기를 잘못 알아 찍을 수가 없었는데 여린 죽순들이 고개를 들고 나오고 있었다. 비를
맞으면, 하루만 지나면,쭈~욱 솟아버린다는 죽순의 모습에서 생명의 순환을 보는 듯하다.
비가 내린다. 조용히.....비가 내린 들판엔 초록 물결이 일렁거릴 것이다. 식물도 자신
의 생명을 지키고 커가기 위해 촉촉이 내리는 빗물에 온 몸을 내 맡기고 햇빛을 찾아
해바라기처럼 하늘을 향해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달빛의 정기를 온몸에 받아들이는데
나는 내 생명을 위해 내 건강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죽순의 꿈 : 죽순이 커서 대나무가 되고 대바구니가 되어 온 우주를 담는 꿈!
죽순의 꿈이기도 하지만 나의 꿈이기도 하다.
푸른 대나무 밭을 상상하며 배경을 그렸고 바닥엔 골무와 바늘집을
대 바구니와 함께 그려 넣었다.
2009-05-24
그림이 있는 에세이 124
위 그림과 글은 畵家 丁蘭淑이 119편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중단하였던 <그림이 있는 에세이>를 올해 봄 다시 쓰기
시작 知人들에게 틈틈이 보내고 있다. 120편 부터 여러 벗님과 함께 보고 읽을 기회를 각고져 블로그에 올린다. 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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