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정란숙의 그림이 있는 에세이 131

뉴도미닉 2009. 7. 31. 10:15

 

 

 

   명제: 접시꽃 당신 2009년 30F Oil on canvas


땡~땡~땡! 하며 차단기가 스르륵 내려지고 깃발을 든 사람의 안내에 따라 영문을 모르며 차를 세우고

쳐다보니 기차가 다니는  건널목이다. 조그만 시골 철도 건널목에서 유유히 지나가는 완행열차의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참으로 오랜만에 기차가 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덜커덩 거리며 지나는 기차를 바라보니 어디론가 기차를 타고 가고 싶었다.

어릴 적 외할머니 댁에 가려면 기차역에서 내려 차단기도 없고 지킴이도 없는 조그만 건널목이 나오면

기차 가 오나 안 오나 하면서 아버지 손을 잡고 건너던 생각이 떠오르고 친구들과 누가 담이 더 크나

하고 기차가 올 때 재빨리 건너뛰기 하든 철없던 생각이 떠올라 혼자 비시시 웃었다.


차가 움직이니 파노라마처럼 엷어져가는 푸른 산과 황토 물로 변한 강물이 물안개를 모락모락 피우며

내 눈앞에 펼쳐진다. 비구름에 싸여 있는 산들이 그림같이 펼쳐지고 장맛비에 불어난 강은 모든 것을

쓸어버릴 듯이 도도한 황토물이 되어 흘러가는데 그 위로 까만 잠자리들이 하늘을 수놓듯 날라 다닌다.

잠자리의 일생은 겨우 반년 정도여서 5~6월에 우화(羽化)한 잠자리는 가을걷이가 끝날 무렵 세상을

떠난다. 그 짧은 생애를 살면서 우리에게 해로운 곤충도 잡아먹고, 한없는 그리움과 향수를 느끼게

해주고 이야기꺼리를 만들어 주고 간다. 조물주가 만들어낸 모든 것은 자기 역할이라는 것이 있다.

그 역할을 순간순간 성실하게 잘해내고 노력해야하는 것은 잠자리도 저기 길섶에 비를 맞고 서있는

접시꽃도 해바라기도 능소화도 그리고 나도 똑같지 않을까?


학생들이 방학을 하니 선생님들도 방학이어서 친구가 서울에 출장을 왔다. 비를 뚫고.......

몸이 멀리 있다고 마음도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문이 열려 있으면 떨어져 있어도 보고픔도 기다림도 기쁨이 된다는 것을 친구들을 만나 확인 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으며 짧은 안부를 서로 전하고 얼굴을 보며 그동안 자신에게 충실하게 살았던

얘기들을 나누고 연수를 하는 장소에 데려다 주었다.

오는 길에 다른 친구를 길에서 만나 며칠 전에 뚫린 춘천 고속도로를 달려 춘천에 계시는 수녀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강촌에 들렸다가 소양 댐 까지 가버렸다. 길이 너무나 좋아서.......

그림 같은 배경을 좌우에 두고 뻥 뚫린 고속도로와 국도가 나를 위한 도로인 것처럼 느껴졌다.


촉촉이 스며드는 대지와 고즈넉한 도로에 장대비가 퍼부어 차창을 뿌옇게 만들다가 이슬비 가랑비가

되어 내리기도 하고 햇살을 빠끔히 내보인다.

저기 보이는 산을 섬으로 만들기도 하고 하늘로 다 올려 가버린 듯 산마루는 운해가 겹겹이 쳐져있다.

회색 빛 구름이 온 하늘에 갖가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싫은 듯 먹장구름이 밀려와 산도 나무도

감춰버리다가 해가 반짝하면 점점 엷어져가는 산의 그림 같은 모습을 짠~! 하고 보여준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다해 찾으면 주어진다는 말이 생각났다.

자유롭기를 바란다면 자신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도 떠오른다.

기쁨과 행복은 마음먹기에 따라 나오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산물이다. 감정의 조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 마음에 느끼는 기쁨도 행복도 비례한다는 것을 느낀다.

요즘 비가 자주오니 비 구경을 가던 예전 버릇이 도졌다.

훌훌 털고 갑자기 떠나는 길에서 자연의 생동감을 바라보며 그들의 비밀을 훔쳐보는 기쁨이 나를 들뜨게

한다. 건강을 회복했기에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는 이 기쁨!

건강한 몸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내 몫이라는 것을 나는 기침 콜록거리고 아파하며 느꼈었다.


한번 도 여행을 해본 적도 없는 저기 소나무와 잣나무가 온 우주의 기를 받아들이며 푸름을 뽐내고,

절벽을 이루는 바위가 우람하게 태고 적의 비밀을 간직한 채 운무에 가려져 우뚝 솟아있는 아름다운

신비를 함께 한 친구와 바라보며 잔잔한 기쁨의 기억을 나눠 가질 수 있었다.

혼자 책을 읽거나 작업하다가 답답하면 횡하고 차를 몰고 다니다가 함께 소통하는 이가 있어 시간을

공유하고 바라보는 것도 참 좋구나! 생각했다.

사람은 혼자 힘으로는 살 수가 없고 만남에 의해서 소통을 하기에 친구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기쁨도

있고, 서로가 보살피려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 몇 시간의 동행이 나에게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살아 있는 생명은 늘 움직이며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끊임없이 움직여 뭔가에 얽매여 묶어두려 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의미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집에 빨리 가야한다는 친구 땜에 춘천시내는 길이 막혀 수녀님도 뵙지 못하고 곧장 고속도로를 달려

서울로 돌아오는 시간은 한 시간도 안 걸렸다. 이제 춘천도 하루생활권내에 들어왔음을 확인한 오후!!


**접시꽃 당신: 장맛비를 흠뻑 맞고 서있는 접시꽃을 오고가는 길섶에서 본다.

               가난에 찌들어 병들어 죽어간 부인을 생각하며 접시꽃 당신이라

               부르며 애달파 한 시인이 생각나는  꽃이다.

               시골 길가에 담벼락에 대문 옆에 화려한 색을 뽐내며 서있는 꽃.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이고 애닮은 꽃.

               불쑥 떠난 길에서 길동무처럼 반겨주는 꽃이 좋아서 .......

  

 

 2009-07-18

 그림이 있는 에세이 131

 

 

위 그림과 글은 畵家 丁蘭淑이 119편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중단하였던 <그림이 있는 에세이>를 올해 봄 다시 쓰기

시작 知人들에게 틈틈이 보내고 있다. 120편 부터 여러 벗님과 함께 보고 읽을 기회를 각고져 블로그에 올린다.  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