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여행 40일-12편[이따찌아이아 휴양지-2/3]
4월 25일 북쪽 창이 밝아온다.
밤새도록 신열과 기침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보냈다.
지난밤엔 진도화가 손짓 발짓으로 추가로 장작을 주문해 밤새도록 불을 피울 수 있었다.
이곳은 위도상으로 남반부에 속해 해가 동북쪽에서 떠 북쪽에 머물다가 서쪽으로 진다. 온종일 해가 북쪽에
머물고 있어서 북쪽이 남쪽인 양 착각하게 된다. 꼭 서쪽에서 해가 뜨는 것 같다.
계절도 한국과 정반대이므로 이곳 6월은 한국의 12월과 같고 4월은 한국의 10월과 같다.
짙게 끼었던 안개가 서서히 걷힌 산 중턱으로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민다.
무리였지만 일찍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 길 건너 숲 속에는
꿩만 한 크기의 검은 새와 원숭이들 세상이다. 새는 사람이 가까이 가도 달아나지 않는다.
원숭이들은 쓰레기장에서 식당에서 버린 과일을 훔처먹으려고 모여든다.
레스토랑에 들리니 투숙했던 관광객 중 일부가 이미 떠나 두 세대 총 다섯 명만 남았다.
식탁에는 언제나 방 번호가 놓여있고 사람 수대로 세팅해 놓아 바로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다섯 명을 위해 주방장이 직접 나와 차려놓은 음식을 일일이 설명해 준다.
음식 종류와 양은 그리 많지 않으나 맛과 질은 오늘까지 브라질 여행 중 최고로 손꼽고 싶다.
오늘은 새로운 젊은 웨이트리스가 써빙하는 데…….
유니폼을 입지 않고 청바지에 털 재킷을 걸쳤다. 비만으로 허릿살이 삐져나온 모습은
불쾌감은 없었으나 좀 우스꽝스럽다.
레스토랑 벽에는 세 개의 유화 초상화가 걸려있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초상화의 내력을 알아보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호텔 설립자 도나찌[Donati]씨와 그의 매니저 그리고 매니저 딸의 어린 모습이다.
그 딸이 현재는 할머니가 되어 이곳 호텔 입구에 있는 하얀 집에서 기거하면서
호텔을 운영한다고 한다.
아침은 조금만 들고 바로 객실로 돌아갔다.
기침을 동반한 몸살감기가 점점 심해 온종일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점심과 저녁은 객실로 배달한 음식을 들었다고 하나 지금도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어느 병원인가 입원하여 잘 아는 여인의 간호를 받고 있는 환상에 젖어 있었던 것 같다.
다행히 밤늦게부터 정신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고 병세도 차츰 낳아졌다.
다음날에야 자세히 안 사실이지만 처형과 진도화는 낮 동안 잠시 틈을 내 산책을
했을 뿐 하릴없이 방안에 있어야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처형이 엄청나게 화가 나셨다고 하는데
다름이 아니라 자식들이 오지 산속으로 세 늙은이만 보내놓고 안부전화 한 통 없으니
고려장이 아니고 뭐냐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대로하신 일이다.
4월 26일 다시 아침이 밝아왔다.
기침은 계속되었으나 비상약 덕택에 많이 좋아졌다.
더 누워있다간 안될 것 같아 아침 식사 시간에 맞추어 일찍 일어났다.
무슨 이유인지 오늘따라 원숭이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새들도 안 보이고…….
레스토랑에 들리니 주방장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케이크를 들고 나온다.
자기가 아침에 직접 구웠다고 맛있다는 설명도 잊지 않는다.
다섯 명을 위해 수고하는 주방장과 그의 직원에게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물론 웨이트리스는 유니폼으로 예쁘게 갈아입고 나왔고…….
아침을 마치고 처형과 진도화와 옥외 수영장을 다시 찾았다.
주위 삼림도 아름답고 꽃도 많고 의자가 있어 휴식처로는 최상의 장소다.
언제인가 큰 질녀가 많이 주워왔던 '삥야오[Pinhao]'가 널려있다. 한국의 잣나무와는 달리
특이하게 생긴 삥야오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다.
객실에서는 전화가 되지 않아 아직 노기가 풀리지 않으신 처형[85세]과 같이
사무실을 찾았다. 전화 부스에서 처형이 직접 상파울루로 전화하시고는 화가 풀리시는 것 같았다.
처형을 모시고 여직원의 안내로 본관[사무실/식당] 구경을 했다. 지하에는 커다랗고 아담한 빠가 있고
2층에는 여러 용도의 방들이 있는데 이곳저곳으로 다니며 자세히 설명해 준다.
물론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처형이 통역을 해주셨다.
본관 지하실에 있는 아담한 빠.
요즘은 한가하여 손님이 없으나 주말과 여름에는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오후가 되면서 갑자기 검은 구름이 소낙비를 몰고 왔다.
아침에 새와 원숭이가 보이지 않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소낙비가 내릴 것을
미리 감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비는 잠시 내렸다가 그첬고 처형은 주무시겠다기에 진도화와 둘이서 산책길에 나섰다.
우선 우림 속에 가보기로 했다.
하늘만 빠끔히 드러난 소로를 따라 한동안 가다 보니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든다.
어디선가 갑자기 맹수가 튀어나올 것 같기도 하고 싫어하는 뱀도 나올 것 같아
전에 영화에서 본 밀림의 장면을 상상하며 조심조심 사방을 살핀다.
훗날 남는 것은 마음속의 기억뿐 사진만 한 것이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틈틈이 아열대성 우림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고 또 담았다.
시간이 꽤 흘렀다.
가도 가도 똑같은 장면의 연속이고 두려움이 심하게 몰려온다.
우리는 죄인처럼 뒤를 힐끔힐끔 돌아보며 온 길을 더듬어 소로를 빠져나오니 안심이 되었다.
발길을 호텔 아래쪽인 영내 입구 쪽으로 돌렸다.
위쪽과는 전연 다른 분위기가 펼쳐진다.
쉬엄쉬엄 풍경과 야생화를 담다 보니 서북쪽 하늘이 물들기 시작한다.
오늘도 해가 저문다.
내일은 병상이 되었던 이곳을 떠난다.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억수같이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벽난로에 장작을 넣는다.
콜록거리며 담아온 사진을 확인하고 오늘과 어제 있었던 일들을 메모하다 보니 밤이 깊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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