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에세이를 올리며
어느 늦가을 날 산책에서 돌아온 작가 정란숙이 잠시 이젤을 제쳐놓고 Richard Clayderman의 로맨틱하면서도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젖어들어 그녀만의 상념에 잠겨 음악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황금빛의 소국과 함께 돔에 올려
성탄절과 올해의 마지막 날을 장식해 보았다.
2013-10-12
그림이 있는 에세이198
그림/글 작가 정란숙 명제: 황금빛 가을 2013년 작 15F Oil on canvas
가을 들녘이 하루가 다르게 금빛으로 변한다. 백로와 두루미들이 날아와 자맥질을 하고, 청둥오리들이
유영(遊泳)하는 조그만 개울 옆으로 벚나무가 심어진 산책길에 오랜만에 걷기 하러 나왔다. 하늘은 거칠
것 없는 푸르름이 가득하고 가까이, 그리고 멀리 보이는 들판에 황금빛으로 변한 벼 이삭들이 그 위를
지나는 바람에 금빛 이삭이 춤추고 노래하는 듯 “싸~삭” 소리가 난다. 곱게 물든 벚나무 잎에도 황금빛
빛의 조각들이 쏟아져 내리는 가을 한낮! 밝고 가볍게 스쳐 지나는 바람에 온몸으로 소리를 내며 이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라는 듯 보고 느껴 알리라는 듯 눈부시게 가을은 빛이 난다.
한여름 정신없이 전시해야 하는 작품에 매달려 캔버스와 씨름하듯 살다 보니 가을이 성큼 오고 말없이
지나고 있다. 길고 짧은 평생에 깊어지고 온전해진 생명이 저마다 결실을 얻어 조용히 제 발밑에 내려
놓았다. 한해의 결실을 얻는 가을이라는 말이 실감 나게 하는 들판을 바라보며 걷다 들어와 글을 쓴다.
지인이 보내온 ‘Richard Clayderman concert’ 피아노곡을 들으며.... 강하게 그리고 여리게 울림을 주는
피아노 선율이 방안에 가득하다. 가을은 바이올린 소리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내는 피아노 소리가 마치 옥구슬이 은쟁반에서 굴러가는 듯 듣기가 좋아 볼륨을 높여 놓았다.
악기를 만들 때 같은 수종이라도 오래된 나무일수록 소리가 좋다고 한다. 나무가 오래되면 쪼개어 말릴
때도 곱게 마르고 만들 때도 애를 먹이지 않고 장인의 손에서 곱게 다듬어져 편하고 맑고 따뜻한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럼 악기가 몸통인 사람은 어떨까? 성악을 하는 사람들이나 가수들은 어떨까? 세월이 지나고
연륜이 쌓여야 깊이가 있고 감동이 있는 소리를 낼까?
얼마 전에 일주일 간격을 두고 두 개의 공연을 봤었다.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본 <인순이 콘서트>와
고양 아름누리 음악당에서 본 <청춘 합창단>의 공연이었다. 두 공연 모두 사람이 악기가 되어 소리로
우리에게 느끼고 공감하게 하고 대화하게 했다. 두 시간 동안 지칠 줄 모르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노래와
춤을 추며 밤하늘 가득 함께 어우러지게 하고 몰입할 수 있게 하던 인순이의 열정의 퍼포먼스는 쉬이 늙어
버리는 것 같은 내 몸과 맘을 다시 추스르고 열정을 갖고 작업을 해야겠다는 것을 느끼게 해줬다면,
<청춘합창단> 공연은 평균연령 65세인 단원들이 지휘자의 손에 서로 눈과 눈을 맞추며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뿐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노년의 꿈과 희망을 품게 만드는 감동의 공연
이었다.
KBS 남자의 자격 청춘 합창단이 방송되고 난 후 헤어짐을 아쉬워했던 단원들이 그 소중한 인연을 민간
합창단으로 다시 창단하여 2년 동안 국가행사는 물론 소외된 계층을 찾아가 재능 기부를 하면서 노년의
삶을 펼치며 첫 번째 정기공연을 하는 자리에 지인들과 함께해 축하를 하면서, 86세인 최고령(노 강진)
어머니가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라는 짧은 독창을 하시려고 불안한 걸음으로 한 발짝 앞에 나오신
것을 보면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고 광주 집에 홀로 계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음악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추억을 연결해주고 그 대가로 생명력을 얻어 언제나 우리 곁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봤다. 우리가 느끼건 느끼지 못하건 음악과 우리는 어떻게든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삶이 다르고 살아온 연륜도 다른 사람들이 한목소리가 되어 지휘자의 손짓에 음악이 탄생하는 것을
보면서 오케스트라나 합창의 지휘자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영광, 바라보는
객석 관중의 영광을 위해 자기 몸짓으로 음악을 설명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감동은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것이고, 감동은 남의 마음을 잘 헤아릴 때 나올 수 있다는 것도 느꼈다.
나 또한 나만의 지휘자가 되어 좋은 작업을 하려고 부단한 노력을 하고, 산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내다 보면, 나도 누군가를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사람은 감동을 할 때 마음이 움직이고 태도가 변하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
해야겠다. 스스로 북돋우며.....
피아노 선율이 끝났다.
방안에는 정적이 흐른다.
이 고요가 좋다. 충만함이 가득해서인가?
**황금빛 가을: (만추의 여정)이란 주제로 성북동 꽃담집에서 (10월 2~30일)
초대되어 전시를 하는 작품이다. 황금빛 들녘만큼이나 내 마음에도
황금빛 가을을 가득 담고 싶어서 노란 소국을 내 마음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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